평생 엄마 편으로 남을 수 있기를

by 윤슬작가

"엄마 밥은 먹었어?"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출근하는 길이나 운전을 할 때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한다. "밥은 먹었어?"라는 말이 그리 멋진 말은 아니지만 습관처럼 가장 먼저 튀어나온다. 그러면 엄마는 "그럼 먹었지"라는 짧은 대답을 건넨다. 엄마는 모르지만 그 순간 나의 감성 민감도가 작동된다. 요즘 엄마의 일상이 몇 도인지, 불편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는 일은 없는지, 그럭저럭 보내고 있는지, 걱정에 불안감은 없는지까지. 완벽하게 맞추지는 못하지만 나의 감성 민감도 확률은 제법 높은 편에 속한다. 오늘도 출근길에 전화를 했다. 온도는 조금 따듯했고, 목소리를 제법 높은 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살아가면서 엄마를 마주할 일은 줄어들고 있다. 울산에 내려갈 기회를 억지로 만들지 않으면 단둘이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작년부터 울산에 일부러 내려갈 일을 만들어 몇 번 다녀왔다. 그래봤자 두 번밖에 안 되지만. 희한하게도 엄마와 마주할 일은 줄어들고 있는데, 엄마를 떠올리는 순간은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이 갑자기 자랐다는 느낌을 마주했을 때, 남편에게서 서운함이 느껴질 때, 혹은 몸이 아플 때 불쑥불쑥 엄마가 떠오른다.


언젠가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 우리 키울 때 기억나?"

"엄마, 내가 속 많이 썩였지?"

"엄마는 아빠하고 어떤 게 제일 안 맞았어?"

"엄마는 제일 좋았던 시절이 언제였어?"

"엄마는 언제가 제일 힘들었어?"

"엄마도 하고 싶은 게 있었지?"

...


나는 참 질문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질문을 시작하면 줄줄이 사탕이다. 엄마가 아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준 것도 있었지만,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지나간 것도 많았다. 아쉬워하는 것도 같았고, 후회 같기도 했고, 서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말을 많이 한 얘기도 있었고, 침묵을 가장해 별일 없었다는 듯 지나친 이야기도 있었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엄마 속을 썩인 것만 해도 한 바가지일 텐데, 오죽할까 싶었다. 그런 엄마가 언젠가 첫째에게 했던 말은 정말 진심이었지 싶다.

"할머니도 지금 태어났으면 좋겠어"


엄마가 목소리도 높아지고, 고집이 세졌다고 가끔 아버지가 하소연을 털어놓곤 하신다. 너무 과하게 밀고 나가는 부분이 없지 않아 사실 그럴 때는 옆에 앉아있다가 엄마 다리를 꼬집기도 한다. 그만해도 된다고.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지만 별 소용이 없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정말 엄마가 듣고 싶고, 받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엄마는 '편'이 필요한 것이다. 아쉬웠던 시절에 대해 공감해 주는, 참기만 했던 시절에 대한 답답함을 이해해 주는, 너무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말해주는,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길 거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동시에 나는 알고 있다. 아버지에게는 그러한 세심함이 너무 어려운 숙제라는 것을. 그래서 결심했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기로. 아버지로 살지 못했기에 그 마음을 모두 알 수 없다는 생각에서 아버지를 이해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볼 생각이다. 엄마는 똑같은 이름으로 불렸지만 결이 다른 삶을 살아온 시절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고 싶었다. 평생 '엄마 편'으로 남아볼 생각이다.


"딸! 아침부터 애들 챙기고 돈 벌러 간다고 고생 많지?"

엄마의 말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엄마, 애들도 건강하고 일하면서 돈도 벌고 이게 행복이지?"

"그래, 그래"


웃음을 머금은 엄마의 "그래"와 함께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래, 그래, 이게 행복이지"


from. 기록 디자이너 윤슬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하늘을 품은 군위 화산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