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아차려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by 윤슬작가

예전이라면 옳다, 그르다에 대한 판단조차 필요하지 않았는데, 코로나를 맞이하면서 조심성이 늘어난 것이 있다. 바로 장례식장에 가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나도 그렇고, 남편이 그랬다. 부친상과 모친상을 당했다는 소식에 고인의 명복을 비는 마음만큼이나 고민스러운 것이 장례식장에 참석하느냐, 마느냐였다. 좋은 일이라면 몰라도 슬픈 일이라면 더욱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지만, 근래에는 그 마음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참석하자니 조심스럽고, 참석하지 않으려니 죄송한 마음에 고민이 깊었다.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을 두고 고민하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정말 우리에게 닥친 것이 무엇일까, 우리가 알아차려야 하는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일까? 코로나 시대일까? 정말 코로나가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코로나의 종식'을 유추할 수 있는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정말 끝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오래도록, 어쩌면 평생 끝날 것 같지 않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코로나와 상관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고민이 더욱 깊었다. 결국 나는 결정을 내려야 했고, 조의금으로 애도의 마음을 대신하며 미안함을 문자로 대신했다.


코로나는 익숙하게 생각했던 것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고, 당연하다고 했던 것들에 물음표를 던지며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방식의 삶'을 관해 계속적으로 말을 건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떠올리며 연대, 공감, 사랑을 표현하고 싶지만, 수시로 걸음을 멈추고 주저하게 만든다. 코로나는 지구가 우리에게 알리는 신음 소리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했던 모양이다. 코로나는 우리의 신음 소리가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우리만의 연대, 공감, 사랑이 많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마치 지구를 대신해 코로나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함께 살아가고 싶니?"

"정말 함께 살아가고 싶었던 거니? 정말?"

...

"나는 늘 애매하게 들렸어. 너희들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어"

"너희들이 어디에 있는지 잊고 사는 것 같았어"


from. 기록 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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