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하면 스티커지!'라고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스티커 덕후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종류대로 모우는 취미가 있었다. 감정을 나타내는 스티커, 음식의 종류를 나열한 스티커, 몸의 컨디션을 표현한 스티커, 하다못해 칭찬과 격려, 위로의 글자 스티커, 성공 또는 실패, 혹은 방향을 나타내는 스티커까지. 마치 스티커가 나를 대신하는 것처럼 수많은 스티커로 그때그때 감정과 느낌을 다이어리에 장식했다. 가끔 다이어리가 얇거나 작은 경우에는 스티커가 밖으로 삐져나오기도 했는데, 그런 상황도 아랑곳하지 않고 낯선, 혹은 예쁜 스티커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손이 먼저 앞으로 나갔다.
스티커에 비하면 조금 덜 충동적이지만, 볼펜에 대한 애정도 각별했다. 삼색 볼펜은 기본이었고, 칠색 볼펜, 형광펜, 색연필, 형광펜, 야광펜까지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펜에 대해서도 정성을 다했다. 평소 활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다이어리에 기록하기 위한 볼펜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생각해 보면 스티커, 볼펜에서 관심이 끝나지 않았던 것 같다. 솜씨는 없지만 가끔 다이어리 커버를 바꾸기도 했다. 이렇게도 해도 소용없고, 저렇게 해도 소용이 없다 싶으면 '커버가 이상한 것 같아'라며 다이어리 자체를 바꾸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날에는 훗날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멀쩡하게 잘 쓰고 있는 다이어리가 있는데도 비상용으로 다이어리를 구입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다이어리를 활용하여 이룩한 성과는 미비하지만 다이어리 자체에 대해서는 지극정성이었다.
지금은 ’다꾸‘라는 그럴듯한 애칭이 생겼지만 나조차도 나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힘이 필요했다. 꼭 필요한 것도 아니면서 스티커를 사 모으고, 집에 볼펜이 남아도는데 다이어리용으로 또다시 볼펜을 사고, 목표관리 또는 자기 관리가 되는 것도 아닌데 틈만 나면 다이어리에 뭔가 적고, 체크하고, 낙서 비슷한 글을 남겼다. 그러니까 전혀 생산적이지 않아 보이는 일을 굉장히 생산적인 일을 하는 사람처럼 덤벼들었다. 아주 가끔 반성이라는 것을 하기도 했었다. 낭비가 심한 것 같다는 반성을 하 후, '다음에는 스티커를 만나면 쳐다보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었는데,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미 손에는 스티커가 들려 있었고, 계산이 끝난 여분의 다이어리를 가방에 챙겨 넣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내게 다이어리는 거창한 목적을 달성하거나 성과를 이루기 위한 도구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다이어리에 스티커를 붙이고, 뭔가를 쓰는 순간이 기쁨이고 즐거움이었을 뿐이다. 어떤 것을 할 때는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어야 할 것 같지만, 모든 일이 그렇게 시작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즐거움, 기분 좋은 순간을 보냈다는 경험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다이어리 쓰기가 그랬다. 많은 사람이 다이어리를 쓰면 어디에 도움이 되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의미, 목적, 본질을 강조하면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쉽지 않고 꾸준하게 지속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전해주는 말이다. 다이어리 쓰기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우선 재미를 챙겨보라고, 즐거움을 느껴보라고. 스티커도 좋고, 펜도 좋고, 덕후가 되어도 좋고, 예상하지 못한 지출이 생기겠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마음이 선물처럼 찾아갈 것이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