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철이 들긴 든 모양이다

by 윤슬작가

언제부터인가 카톡으로 '우리 딸 고맙다. 사랑해'라는 문자를 보내주는 친정엄마에게 늘 '엄마 또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해요'라는 답장을 보내고 있다. 가끔 엄마는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입할 게 있으면 부탁을 했고, 나는 쿠팡을 활용하여 제때,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고작해야 영양제 또는 건강식품인데, 매번 엄마는 카톡으로 답장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살아오는 동안 엄마에게 받은 것이 훨씬 많은데, 엄마는 그 모든 기억을 잊은 사람처럼, 쿠팡에서 온 물건을 확인하자마자 카톡을 보내준다. 얼마 되지도 않은, 비싸지 않은 물건인데 누가 보면 엄청 좋은 명품 가방이나 선물을 보낸 것처럼 잊지 않고 '고맙다, 사랑해'를 빠뜨리지 않는다.


엄마의 카톡을 받을 때마다 희한하게 더욱 미안해지는 요즘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엄마 딸로 지낼 때, 그러니까 엄마의 그늘 아래에 있을 때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이제와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마음,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힘겨움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면 과장일 것이다. 하여간 그때는 고마운 게 무엇인지 몰랐고, 나 힘든 거 알아달라고 투정 부리기 바빴다. 그러다가 두 아이를 놓고, '엄마'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것 같다. 바라보는 시선, 생각, 관점에 자연스럽게 변화가 생겨났다. 내가 딸을 키우는 게 아니라 딸을 키우면서 내가 자랐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가끔 딸이 무심히 하는 행동에는, 어떤 뜻도 없는 순간적인 감정이나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서운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스터디 카페에서 늦게 돌아올 때, 몇 시에 오는지, 조금 더 빨리 오면 안 되는지 두어 번 얘기를 했더니 짜증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걱정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지나치다나, 어쨌다나. 마음이 상했던 그날 밤, 아이가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얼굴도 보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엄마 마음은 알겠는데, 내가...'라는 말을 건네왔지만 무심한 척 '알겠어'라고 속 좁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아침을 챙겨주는 일도 그런 것 같다. 별 보기 운동이라, 뭐라도 먹여 보내려고 준비해 쟁반에 담아 책상 앞에 올려주고 있다. 교복 입으면서, 가방을 챙기면서 먹으라고. 하지만 바쁜 아침이라 그런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어서인지 손도 닿지 않은 날이 많다. 며칠 그러고 나면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모든 행동에서 의미를 발견해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자꾸 '의미를 만들어내는 탁월함'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그랬던 마음도 잠시, 요즘은 그 장면 위로 과거의 어떤 순간이 오버랩되는 일이 많아졌다. 아침을 먹는 것도 그렇고, 엄마의 애정과 관심을 지나친 간섭이라고 여기며 말을 툭툭 던질 때도 그렇다. '그래, 나도 엄마에게 저랬겠지. 엄마의 시간을 먹고 자랐겠지, 엄마의 인생 위에 나의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몰랐지'라며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도 딸이 나보다 나은 것 같다. 나의 반항은 이십 대 초반에서야 끝이 났는데, 딸은 양호한 편이다. 빈도도 그렇고, 강도도 그렇고,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개성을 발휘하는 과정이지, 무리하게 방황하는 것 같지는 않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으면서 알아서 일이 잘 풀려야 한다고 말하거나, 온 마음을 다해 매달리지는 않으면서 결과가 배신을 했다고 핑곗거리를 찾지는 않으니, 암만 봐도 나보다는 순한(?) 편 같다.


그러다 보니 딸에게 느껴지는 서운함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일시적일 때가 많다. '그럴 수 있지'라고, 한 걸음 물러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그럴 때마다 한 걸음이 아니라 두 걸음, 세 걸음 물러났던 엄마가 떠오른다. 믿음이 바닥난 상태에서도 무엇이든 해 보고 싶다면 시도할 수 있게 도와준, 믿음을 실천해 준 엄마가 생각난다. 그 시절 실패라고 정의된 경험이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나를 이루는 자양분이 되었으니 분명 나에게는 기회의 시간이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과연 엄마에게도 그랬을까. 요즘에 와서 부쩍 드는 생각이다. 내가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엄마를 괴롭힌 것 같아 미안할 뿐이다. 어찌 되었거든, 철이 조금 들긴 든 모양이다.

from.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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