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e is best!"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심플'이라는 단어를 가볍게 생각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얘기한 찰리 채플린의 메시지는 포함할 만큼의 무게감은 포함하고 있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마음을 유지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드는 모순적인 상황에 대해 두 눈을 감고 당하지는 않겠다는 정도의 결의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그리 길지도 않은 세월,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울 수 있다면, 거기에 유머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보다 "best"는 없을 것이다.
<체호프 단편선> 을 읽는 내내 "simple is best!"를 반복적으로 되뇌었던 것 같다. 열 편의 단편이 자신에게 말을 걸듯, 그리고 세상을 향해 말을 걸듯 소소한 일상을 시시하게 마무리하지 않은 체호프의 시선이 상당히 날카롭다. 아니 섬세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스토리는 단순하고 어렵지 않은데, 자꾸만 멈칫거리게 된다. 지켜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꾸 말을 걸어오는 통에,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에 비해 행간에 머물렀던 시간이 제법 길었다. 체호프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한 주제의식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콕 집어서 입안에 넣어주기를 거부하는 모습이다. 소란스러운 결말이든, 차분한 분위기에서 일어나는 반전 결말이든, 어디까지는 마무리는 독자가 완성하기를 바라는 모습이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 같아?"
2021년에 <이해한다는 것>이라는 짧은 소설집을 출간했다. 이전의 몇 년의 시간 동안 짧은 소설, 단편 소설의 매력에 흠뻑 빠져지냈었다. 그러면서 '나도 이렇게 짧은, 혹은 단편 소설을 써 보고 싶어"라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자주 했었다. 물론 여기에는 <체호프의 단편선>도 큰 역할을 했다. 결말도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었던 터라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주제의식이 분명한 것도 아니었고, 또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메시지도 없이, 누군가가 보기엔 가벼워 보일 수 있는, 고민의 흔적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한 편씩 글을 완성하는 동안 일상성을 회복하기를 바랐고, 동시에 일상성을 경험하기를 희망했다. 소재는 '어떤 사건'이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받아들이는 마음'이라는 것을 공론화시키고 싶었다고나 해야 할까. 용기 내어 그 길을 들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책이라 더욱 마음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체호프 단편선>은 '관리의 죽음'을 시작으로 열 편의 단편이 실렸다. '관리의 죽음'은 '재채기'라는 시시한 사건이 한 사람의 마음 안에서 어떻게 자리를 만들고 커져가는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묘사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관리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더 슬픈 것은 관리에게 "당신, 참 어리석군요!"라고 말하기엔 내 안에도 어리석음이 존재한다는 자각이었다. 아주 약간 삶이 비틀어놓은 조건 앞에서 관리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하지만 약간의 비틀거림에 넘어지는 사람이 어디 관리뿐일까 싶었다. <공포> 역시 '어리석음'이 군데군데 고개를 내밀고 있다. 서글픈 부부 생활이라면서도 두 사람은 끝내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끝맺는데, 아마 그들은 무덤까지도 함께 갈 것 같다. 그들에게 '진실'을 마주할 용기는 없어 보였다. 거기에 '운명을 개척할 용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들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밖에도 '베짱이','드라마,'미녀'를 포함하여 다양한 작품이 소개되는데, 읽는 동안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지 할 정도로 몰입감을 경험하게 된다. 긴 작품 이후 약간의 휴식이 필요한 사람, 짧은 소설에서도 서사성이 확보될 수 있는지가 궁금한 사람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라고 질문했다면, 체호프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라고 묻는 것 같다. 삶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속에도 정답이 없는 것 같다. 체호프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개성이 뚜렷하고, 각자 추구하는 것이 있다. 그러면서도 '이것은 이렇게, 저것은 저렇게'라고 이분법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아마 그래서 내가 <체호프 단편선>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from. 기록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