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은 어떻게 찾으세요?"
글쓰기 관련해서 모임 또는 강의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에 한 가지이다. 에세이를 쓴다고 하면, 열몇 권의 책을 썼다고 하면 글을 쓸 거리가 그렇게 많이 있는지, 글감을 찾아내는 나만의 특별한 비결이 있는지 궁금해한다. 그럴 때면 어떤 접근이든 글쓰기와 관련해서 뭔가를 전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우선 나는 메모를 활용한다. 다이어리에 메모하든, 핸드폰에 메모하든, pc 바탕 화면에 메모하든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기록해둔다. 대부분 문장으로 표현하고, 기록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설명하여 기록해둔다. 어떤 사람들은 분류를 하고, 해당하는 것을 정리하여 메모를 하던데, 나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다. 떠오르는 대로, 그때그때 편한 것을 활용한다. 최대한 길게 설명해두는 이유는 나중에 되면 잘 기억이 나지 않을뿐더러 단어가 적어두면 맥락화시키기가 어렵다. 분명 멋진 생각이 떠올랐는데, 앞뒤가 사라지고 단어가 혼자 둥둥 떠있는 느낌을 여러 번 경험하고서 터득한 나만의 처방이다.
두 번째는 책이 될 것 같다. 나는 책을 천천히 정독하는 편이다. 밑줄을 긋고, 귀접기를 하고 저자와 대화를 하듯 지저분하게 책을 읽어나간다. 대화는 순조로울 때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물음표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때가 있다. 아니면 '아!'하면서 뒤통수를 세게 한대 두들겨 맞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상황이 허락하면 짧게라고 글을 쓴다. 하다못해 메모를 해둔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는 기쁨과 함께 내 안의 뭔가가 충돌을 일으켜 어떤 세포가 자리에서 들고일어나는 장면이 벌어진 것인데, 아주 가끔 그럴 때면 잠시 '그분'이 다녀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일상생활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많다. 익숙한 사람에서 발견된 낯선 행동, 낯선 이에게서 느껴지는 친근함, 불편한 사람이 풍기는 신선한 메시지까지 나만의 세계가 아닌 누군가의 세계, 어떤 정서나 생각에서 글감을 얻는다. "어떻게 생각하는지?"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거기에서 멈추는 것 같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상상력이 발동되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에 휩싸이는데 그 순간을 놓치지만 않고 기록하거나 메모해두면 한 편의 글로 다시 태어났다.
음악을 들을 때도 비슷했다. 명상음악이든, 오래된 가요든, 하다못해 트로트를 듣다가 불현듯 머리를 스쳐가는 것이 있다. 내 안에 이런 생각이 있었구나, 이런 기억이 있었구나 하면서 상황에 대한 기억은 명확하지 않은데,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지금과는 다른 딴 세상, 완전히 다른 상황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그때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현재, 미래를 왔다 갔다 한다. 타이밍만 좋으면 제법 멋진 글감이 탄생되었다. 한 번쯤은, 아니면 영원히. 이런 부사들이 꾸미는 동사의 세계가 만들어낸 그런 타이밍 말이다. 참 일기나 오래된 기억도 글감이 되었다. 물론 현재도 일기를 쓰고 기록을 하고 있는데, <기록을 디자인하다>를 완성한 이후부터는 일기에서 글감을 가져오지는 않는 것 같다. 그때 1997년부터 2000녀까지의 일기장을 샅샅이 뒤지면서 책을 완성한다고 덤볐더니, 그 이후로는 눈길이 가지 않고 있다.
그 외에도 영화를 본 것, 여행을 다녀온 곳, 동네 산책을 한 것까지 글감은 생각보다 많다. 그러니까 눈으로 보고, 느끼고, 관찰하고, 경험한 것이 모두 글감이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바라보려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다. 모든 것을 처음 본 것처럼 바라보았던 조르바처럼 말이다. 아이의 눈으로 보면 세상이 모두 신기하다. 하지만 어른의 눈,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신기한 것도 익숙한 것으로 보이게 된다. 글감을 어떻게 찾으세요라는 질문에 대해 여러 대답이 나왔지만 아주 간략하게 마무리해 볼까 한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보세요. 이미 가지고 있는 생각을 버리고 보세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롭게 느껴질 때까지"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