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지어내고, 상상하기를 즐겼다. 무대를 만들어 놓고, 몇 명에게 어떤 역할을 배정하는 역할을 즐겼다. 때로는 주연이 되기도 했고, 감독이 되기도 했고, 카메라맨이 되기도 했다. 스치듯 지나간 것을 모조리 사진으로 찍어내는 버릇 같은 게 있었는데, 그게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이렇게 되었겠지?’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버릇 덕분에 상황을 파악하는 일이 조금 빠른 편이었고, 내밀한 감정 세계에 혼자 빠져 지내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본다. 부모님은 나를 굉장히 씩씩한 아이였다고 얘기해주시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누구보다 외로운 아이가 아니었겠느냐고.
그랬기 때문에 어딘가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행위가 자연스러웠다. 마음속에 숨겨놓은 것을 적는 일이 되었든,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든, 미처 눈치채지 못하던 것을 알고 싶은 이유에서든, 두 눈을 뜨고 봐줄 수 없을 만큼의 초라함이 되었든, 어딘가에 표현해야 했는데, ‘끄적이는 행위’는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나의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를 비롯해, 나를 둘러싼 것들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옮기는 행위인 동시에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 싶은 소망이 담겨있었다. 그래서 지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여겨진다.
만약 뚜렷한 목표, 예를 들어 작가 등단이나 출간의 목적이 있다면, 그와 관련해서 방법을 찾거나 수업을 들으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나처럼, ‘말’이 아니라 ‘글’로 내 안의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복잡한 마음을 정리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글쓰기에 대한 정의를 조금 다르게 내려봐도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이런 식으로 말이다.
“글쓰기는 생각을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글쓰기는 내가 이해한 세상을 글로 옮기는 과정이다.”
“글쓰기는 글을 쓰는 사람을 위해 가장 먼저 쓰여야 한다.”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스스로 멋진 글을 썼다는 감탄사가 나오는 날도 있고, 어떻게 생각이 이것밖에 되지 않을까, 답답함을 느끼는 날도 생겨난다. 그 순간을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쓰기는 발견의 도구이며, 글을 쓰는 행위는 욕망의 표현인 동시에 열정의 씨앗이다. 글쓰기를 예술의 한 분야라고 인정했을 때, 예술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할 만한 지점이다. 넘어야 할 산이 있다면, 얼마만큼의 진심으로, 얼마만큼 표현하고 있는가, 정도이지 않을까.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