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다가 괜스레 입꼬리가 올라갈 때가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그럴 만한 일이 생긴 것 같지 않은데도 속으로 미소를 띠었던 것이 밖으로 드러날 때가 있다. 그럴 때 이유를 모르고 바라보면 뭔가 중요한 것을 발견했거나, 행운의 기회를 찾은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그때마다 곁에 사람이 무슨 좋은 일이 있냐고 궁금해하는데 처음에는 별일 아니라고 했다가 요즘은 솔직하게 얘기해 주는 편이다. 그러면 대답을 듣고 난 이후의 반응이 완전히 다르다. '이게 그럴만한 일인가'라는 표정인데,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만큼 좋은 일이 맞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이다. 또 다른 반응은 '아하!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것으로 그런 경우는 내가 주야장천 비슷한 말을 많이 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윤슬 같은 글을 쓰고 싶다'
'윤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윤슬 같은 삶을 살고 싶다'
윤슬 같은,이라는 표현이 나를 왜 이렇게 기분 좋게 만들까, 왜 이렇게 마음을 설레게 할까.
나는 본명과 필명이 다르다. 그래서 필명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왜 필명은 윤슬로 하셨어요?"
이유는 간단했다. 필명을 만들어야 했고, 나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제2의 이름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몇 날 며칠을 공부하듯 뒤적였다. 국어사전을 펼쳐놓고 시험이라도 치는 사람처럼 페이지를 넘겼다. 어디 그뿐일까. 인터넷의 바다에 몸을 푹 담근 채 하릴없는 사람처럼 들락날락했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잘하고 싶은 일과 연관된 일이었고, 삶이 지속되는 동안 어쩌면 본명보다 더 자주 불릴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깊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꼭 닮은, 굳이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필명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다가 찾은 이름이 순우리말 '윤슬'이다. 윤슬은 햇빛과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잔물결을 의미하는데, 발견하는 순간 '이거다'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윤슬 같을 수만 있다면'. 이보다 그보다 더 멋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윤슬 같은 글.
윤슬 같은 사람.
윤슬 같은 삶 말이다.
윤슬. 내가 가고 싶은 길에 대한 비전이기도 하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재미를 찾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아주 가끔 '나'라는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윤슬'은 내 인생의 배경화면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혼자 배시시 웃게 될 때가 있다. 벅찬 감정도 심취해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낄 때가 있다. 바로 이럴 때 말이다.
'글과 사람이 닮아서 좋아요'
'예상했던 이미지여서 좋아요'
그 말이 '그럴만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는 얘기를 듣곤 하지만, 그렇게 기분 좋아질 일이냐고 묻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좋은 것을.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