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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작가 Jan 23. 2024

18번째 책의 퇴고를 마치며

새벽이 깊어져 가고, 밤의 정적만이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벽시계도 무음으로 움직여 그야말로 세상 조용한 시각입니다. 지난주부터 이번 주까지, 정확하게는 어제까지 수면시간이 불규칙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18번째 책의 원고를 퇴고하는 중이었거든요. 누군가에겐 고되고 힘겨운 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저에겐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순간입니다.      


퇴고는 몇 단계에 거쳐 진행되는데, 막바지에 이르면 그야말로 온통 신경이 곤두섭니다. 집중해서 한꺼번에 고쳐내고, 일정 기간 쉬었다가, 또다시 몰아서 고쳐나가는 방식이라 이 시기에는 가족들도 ‘가능한 저에게 아는 척’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엉뚱하게 불똥이 튀어 몇 번 고생한 경험이 있거든요. 그러면서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질문해 옵니다. 꼭 책을 내야 하는 이유가 있느냐고 말이죠. 그때마다 저는 항상 똑같은 대답을 해줍니다.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저에게 책을 출간한다는 것은 글쓰기 그 이상의 의미입니다. 간략하게 표현하면 딱 한 단어, 정체성을 설명하는 도구입니다. 지난 일 년 동안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저는 탐구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저를 탐구하고, 제 생각과 감정을 탐구하고, 일상의 조각을 탐구하고, 인생이라는 퍼즐을 탐구하여 글로 정리하는 작업을 거쳤습니다. 책은 그런 일 년 치의 탐구 활동, 일 년 치의 경험을 통합하는 과정인 셈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책을 꾸준히 출간할 수 있었던 이유이고, 앞으로도 책을 완성해 나갈 수 있을 거라 믿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정체성을 확인하고, 경험을 통합하는 과정을 즐긴다고 해도 퇴고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돋보기를 들고 구석구석 다니면서 문장을 고르고 다듬는 일은 만만한 작업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저는 퇴고를 이어가고, 반복합니다. 왜냐하면,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생각과 감정이 정리된 새로운 형태의 글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글 속에 숨겨진 저도 미처 알아내지 못한 진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낸 지난 몇 주. 어제까지 퇴고를 끝내고 오늘부터 교정 교열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는지 곁눈질도 하게 되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떠오릅니다. 또 하나의 이정표를 빠져나가나 봅니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작가     

#글쓰기 #에세이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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