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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주의자

by 윤슬작가

“오늘은 참자. 오늘은 넘어가지 말자.”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길, 늘 속으로 되뇌인 말이다. 하지만 그러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어김없이 집 안 어딘가에서 작동하는 배꼽시계가 나를 배신했다. 한 숟가락이 두 숟가락이 되고, 막걸리 한 잔이 두 잔으로 이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그리고 곧바로 밀려오는 감정 하나.


‘아, 오늘도 실패다.’


누군가는 배가 고프면 잠들지 못하고, 든든하게 먹고 배를 두드리며 누워야 마음이 편하다지만 나는 조금 달랐다. 포만감보다 ‘왜 또 그렇게 많이 먹었을까’라는 마음이 훨씬 오래 남는 사람이다.


10월 중순부터 바쁜 일상이 이어지긴 했다. 이유는 많았고, 변명은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아침 달리기를 자연스럽게 놓쳤다. 새벽은 너무 어두웠고, 저녁에는 운동할 여유를 찾기 어려웠다. 그러는 사이 운동은 나에게서 조금씩 멀어졌다. 몸은 그 변화를 정확하게 알아챘다. 남편과 마시는 막걸리 한 잔, 맥주 한 잔이 일과의 위로가 되어주었지만, 찌뿌둥함과 무거움,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말 그대로 몸과 마음에 동시에 ‘비상 상황’이 들어섰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한 것은 주위 사람들이 오히려 “살 빠졌어요?”라고 자주 물어왔다는 점이다. 정작 몸무게는 고공행진 중인데 말이다. 그 말에 아주 잠깐 위로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지우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지난주, 아파트 헬스장과 수영장에 다시 발을 들였다. 상체 운동 후 러닝머신을 조금 타고, 하체 운동 후 자전거를 타며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몸을 움직였다. 토요일에는 자유수영이 가능해 짧게라도 물속에서 몸을 풀었다. 그렇게 며칠을 이어가며 나는 문득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나는 먹기 위해서라도 운동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운동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라도 운동이 필요하구나.”


이 단순한 발견이 나를 웃게 했다면 믿을까. 내 삶의 일부가 질서정연하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많은 것이 자연스럽게 설명되는 느낌이었다. 사람마다 삶을 유지하는 방식은 다르다. 어떤 일은 행위 자체가 보상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결과가 기쁨을 만든다. 이번 일에서 알게 된 것처럼, 바쁜 일상을 이유로 운동을 하지 않을 때, 그로 인해 늦은 저녁을 먹는다는 것이 죄책감으로 이어졌고, 그 감정이 내게 우울함까지 얹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짐했다. 먹고 싶다면, 아니 마음 편히 먹기 위해서라도 운동을 해야겠다고.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물론 그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날이 오더라도 너무 예민하지 않게 바라봐야겠다고.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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