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임신담에 머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바라던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는 영화가 전달하고자 했던 '여성의 임신담' 자체에 대한 아쉬움이므로 영화에 대한 적절한 리뷰는 아닐 수 있음을 앞서 밝힌다.
미래(주인공)가 임신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나는 계속 ‘도망쳐’라고 외쳤다. 그 남자로부터도, 그 집안으로부터도, 그 상황으로부터도, 그리고 미래의 인생을 송두리째(그것도 영화 흐름상 매우 높은 확률로 안 좋게) 바꿔놓을 그 아이로부터도. 하지만 미래는 내가 바라던 곳으로 가주지 않았다.
보통 여성의 임신담을 비범하게 풀어냈다는 설명이 영화 포스터에 덧붙여 있었는데 나는 이제 우리가 그런 임신담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던 것이다.
사고를 당한 임산부가 깨어나자마자 의사에게 “아이는요?”라고 물어보고 의사에게서 아이가 무사하다는 답이 돌아오자 여성은 “다행이에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그런 수없이 반복된 서사 말고. 여성이 여러 상황에 휘둘리다가 주체적으로 엄마가 되기를 선택했다는 서사 말고. 어쩌면 우리의 마음속 깊이 비밀스럽게 자리 잡고 있는 이야기.
임신 사실을 알려주며 우리가 반사적으로 축하의 말을 건넬 때조차 우리가 보는 표정이 하나만은 아니지 않으냐면서요.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 기혼이라도 당혹감과 우울을 숨기지 못하는 산모들, 반대로 뜻밖의 유산에도 안도감이나 위안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오지 않았느냐고 말입니다.
❗️'님포매니악 볼륨2(2013)', '스왈로우(2019)', '로마(2018)' 스포일러 주의❗️
'님포매니악 2'의 조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자 스스로 낙태를 감행한다. 이 장면은 당연하게도 보기 고통스러울 만큼 슬프고 괴롭고 그로테스크하다. 그럼에도 라스 폰 트리에는 낙태하는 장면을 온전히 담아냄으로써 조의 결단과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선택이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음은 물론, 조 스스로를 압도하는 고통과 두려움을 감내해야만 한다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는 끝까지 홀로 낙태 과정을 감당했다.
'스왈로우'의 헌터는 자신을 사랑하는 줄 알았던 남편으로부터 배신감을 느끼고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이후 전화 너머로 "내 아기 데려와 XX 년아"라고 분노하는 남편을 뒤로하고 헌터는 산부인과를 찾는다. 두 알의 약을 받아 삼키고는 화장실로 향한다. 그리고 헌터 또한 화장실 안에서 핏덩이를 배출해내면서 홀로 낙태의 과정을 감내한다. 모든 과정이 끝난 후 헌터는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어내고 거울을 보면서 진심으로 처음 자신에게 웃어 보인다.
'로마'의 클레오는 소피아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며 4명의 아이를 돌본다. 클레오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다 클레오는 남자친구 페르민과의 관계에서 아기를 임신하게 되고, 이 사실을 페르민에게 알리자 그는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페르민의 고향에 찾아가 친구를 통해 우여곡절 끝에 만난 그는 위협적으로 클레오를 쫓아내 버린다. 그 이후로 클레오는 아이를 낳을 준비를 했으나 그녀는 아기를 유산하게 된다. 그 후, 소피아와 4명의 아이들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클레오는 눈물을 흘리며 사실은 아기를 원치 않았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해변에서 소피아와 아이들은 클레오를 끌어안아준다. (포스터에서 처럼)
나는 미래가 스스로 낙태를 감행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선택하길 바랐다. 아니면 마지막 사고에서 유산을 하게 되기를 바랐고 미래가 짓는 희미한 안도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미래는 아이를 낳았고 아이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고 ‘우리 시작해보자’라는 의미심장한 말까지 남겼다.
아이를 낳는다는 말의 무게는 지운다는 말의 무게에 비해 왜 그렇게 가벼운 건지. ‘생명’으로 주장되는 상태의 배아를 지우는 행위에 비해 제대로 한 생명을 책임을 질 수 없는 상태에서 아이를 낳는 행위는 뭐가 그리 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지.
줄곧 태어난 것이 기쁘지 않은 아이로 살아온 나는 참 의문스러운 게 많고 제대로 대답하는 어른은 내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만나지 못했다.
미래는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자신과 똑같은 아이가 세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강미, 자신의 인생에 아이와 미래만 있으면 다 좋을 것 같다던 윤호. 과연 미래는 어떤 답을 찾아 결국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게 된 것일까. 그것이 부디 강미와 윤호처럼 아이가 배제된 자신만의 답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혹시 딸이 있으시다면 절대 꿈을 가지지 말라고 얘기해주세요.
어차피 꿈이 있어도 나중에 집에서 애만 키워야 하니까요.”
박지윤 아나운서의 이 말은 통쾌하면서도 참 씁쓸하다. 그래서 여전히 여성의 미래를 임신으로 귀결시키는 어른을 볼 때 당신들은 그러려고 그대들의 아이를 낳았느냐고 물어보고 싶다. 또 다른 아기를 낳게 하는 사람을 만들려고 아이를 낳아 키웠는지. 시간과 돈과 사랑을 들여서 밥을 먹이고, 잠을 재우고, 예쁜 옷을 사주고, 학원과 학교를 보내고 또 그 모든 세월을 보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