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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Jan 27. 2022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과학, 의미, 질서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필자는 지독한 무신론자임을 글의 서두에서 밝힌다. 여기서 ‘무신론자’의 범위는 신을 인간의 형상을 한 모습으로 묘사하며 그의 말을 경전으로 한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나는 과학과 종교가 종내에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바탕은 유사하다고 믿지만 위에서 스스로 내린 정의에 따라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칭한다.


과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과 돼지는 유전학적으로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 있는 기관은 그들에게도 있고 유전자 형태도, 번식을 하는 방식도 같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은 인간의 능력보다 월등하고 더 다채로운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러니까 인간은 하나도 특별할 게 없다는 말이다. 강아지, 개미, 개구리, 새, 연어처럼 그냥 지구를 이루고 있는 생물체 중 하나일 뿐이다.


이 우주 상에 가장 많은 원소는 C(탄소), H(수소), O(산소), N(질소)인데 인간을 이루는 가장 많은 원소도 동일하다. 이 사실은 나에게 인간이 우주 상에서 특별난 게 아니라 지구가 만들어지고 이 지구 상의 물질들이 만들어진 후에 남은 원소들이 뭉쳐져 어쩌다 만들어진 잉여 생명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로 들린다. 우리는 딱 그 정도의 존재감을 가진 생명체이다.


책의 저자인 룰루 밀러도 아버지(과학자)에게 이러한 사실을 늘 배워왔다. 이에 대해 아버지가 밀러에게 전달하는 방식은 꽤나 흥미롭다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

‘혼돈(엔트로피)’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라고 아버지는 내게 알려주었다.

“혼돈은 우리의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 우리의 꿈, 우리의 의도, 우리의 가장 고결한 행동도. 너한테는 네가 아무리 특별하게 느껴지더라도 너는 한 마리 개미와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걸.

과연 네가 토양 속에서 환기를 시킬 수 있을까? 목재를 갉아먹어 분해의 속도를 높이는 일은?

“나는 네가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런 면에서 지구에게 넌 개미 한 마리보다 덜 중요한 존재라고도 할 수 있지.”

p.58-59 (ebook 기준으로 실제 책과 상이할 수 있음)



나는 스무 살이 넘어서야 깨닫게 된 이 사실을 7살에 어렴풋이라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있었던 밀러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밀러는 다음 질문으로 더 빨리 넘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가 아무 의미가 없는 존재라면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질문이 따라 나온다.


혼돈을 이길 방법은 없고, 결국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라고 보장해주는 안내자도, 지름길도, 마법의 주문도 없다. 자, 이렇게 희망을 놓아버린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해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할까? (p.221)



이 대답에 대한 긴 여정은 12장 <민들레>에서부터 시작된다. 밀러는 그가 만난 사람들을 통해 깨달은 바를 ‘민들레 법칙’을 통해 들려준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p.240-241)



 문장의 감동은 아마 책을 처음부터 이곳까지 부지런히 읽어야만 얻을  있는 선물일 것이다. 물론 밀러가 우리에게  선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조금  깊은 이야기가 뒤에 남아있으니.  나머지 분량의 감동을 미리 알게 하는 실례를 범하지는 않고 싶다. 여러분들이 각자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 그리고 어떤 감동을 느끼고, 끝에서 얻게   무엇인지를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기를 기쁘게 바란다.

나도 아직은 내가 무엇을 얻게 될지 조금 더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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