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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Feb 08. 2022

하루

하마글방 25기, 글감 : 야망

영은 공기처럼 평범했다. 그는 선생님의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학생이었다. 공부는 남들 하는 만큼 했고, 반 친구들과는 적절한 거리 안에서 원만히 지냈다.

김김은 어려서부터 독특한 학생이었다. 머리는 비상했는데 입시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고 미래에 대해서도 그랬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했고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처음에는 그의 비상한 머리에 관심을 보이던 선생님들도 그런 그의 행동에 점차 관심을 끊게 되었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곳에서 그렇게 각자의 인생을 살다가 대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동아리에서 만난 그들은 서로 다른 과에 출신 지역도, 경험한 것도 모두 달랐지만 서로를 이해했다. 순식간에 친해진 그들은 늘 함께 다녔다. 영은 이상하게 김김이 편했고, 김김은 의외로 영에게 의지했다.

영은 부지런히 수업에 들어갔고 김김은 매번 오전 수업에 빠졌다. 그래서 둘은 늘 같이 점심을 먹었다. 영이 수업을 마치고 학관에 도착할 때쯤 김김은 까치머리를 하고 학관 앞에서 영을 기다렸다. 학식을 먹고 나면 김김은 운동장에 서서 담배를 폈고 영은 그 옆에 앉아서 멍하니 생각에 잠기곤 했다. 둘은 그 잠잠한 시간을 좋아했다.


나이가 많은 동아리의 선배들은 늘 김김에게 잔소리를 했다. 다들 그가 너무 엉망으로 산다고 생각했다. 머리는 좋은데 수업도 가지 않고 그렇다고 다른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지 않냐며 김김을 보는 사람마다 모두 한 마디씩 했다.

여느 때와 같이 밥을 먹고 나와 담배를 피우던 김김은 영에게 말했다.

“나 수능 다시 치려고”

그 말에 앉아서 멍 때리던 영은 김김을 올려다봤다. 더운 바람이 이마를 훅 스쳤다.

“사대를 갈까 싶어서.”

영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로 김김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느라 영과 잘 만나지 않았다. 영도 시험기간과 과제를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새 시간이 흘러 수능은 끝나고 학기도 마무리가 되었다. 추운 겨울이 찾아왔다. 영은 동아리실에 갔다가 배선배를 만났다. 그는 매일 도서관에 있기로 유명한 선배였는데, 김김이 수능공부를 하는 동안 두 사람은 매일 함께 도서관에 있는 것 같았다. 영은 종종 배선배를 통해 김김의 이야기를 듣곤 했다. 그는 김김의 수능 성적이 아주 잘 나왔다는 이야기를 영에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사대에 원서를 넣었는데 면접 시간에 늦어서 면접을 보지 못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그 자리에 있던 동아리 사람들은 그런 김김을 걱정하기도 하고 한심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생각 없이 사는 듯한 김김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기숙사 침대에서 책을 읽던 영은 오랜만에 김김의 연락을 받았다.

- 밖에 눈 와.

영은 익숙하게 외투를 챙겨 입고 기숙사 밖으로 나갔다. 정말로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영은 모자를 뒤집어썼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김김 옆에 다가섰다.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운동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늘 앉던 운동장 계단에 털썩 앉아서 한참 눈이 흩날리는 걸 바라봤다.

그러다 영이 말했다

“수능 잘 쳤다며?”

김김은 고개를 끄덕였고 면접에 가지 못한 이야기도 들었냐고 물었다. 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김을 쳐다보았다.

“전날 수면제 먹고 잤어?”

김김은 그렇다고 말했다. 그날은 특히나 잠을 잘 수 없는 게 괴로워서 수면제를 조금 더 먹었다고 털어놓았다.

영과 김김은 서로 중증 우울증 때문에 약을 먹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무도 모르고 서로만 아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증상을 알아보았고 그래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다들 네 미래에 관심이 많더라.” 영은 웃기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상상도 잘 못하는데.”

김김은 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들은 지금 눈이 오고 있고 춥지만 그저 눈을 맞는 게 기분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 외의 생각은 달리 하지 않았다. 영과 김김은 그날 밤새 운동장에 앉아서 함께 눈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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