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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들렌 Nov 14. 2019

믿으려고 하지 말고, 메기에게 물어봐.

영화 <메기>를 보고

믿음, 사랑, 신뢰 같은 단어들은 살아있다. 얘네들은 입으로 내뱉는다고 해서 지켜지지 않는다. 1년 동안 누군가가 너를 믿고 사랑한다고 말해도, 행동하지 않으면 증명할 수 없다. 그래서 <클로저>에서 “사랑한다고? 나는 만질 수도, 볼 수도, 믿을 수도 없어”라는 대사가 나오는지도 모른다. 사랑과 믿음은 행동이라는 근거가 있어야 논증된다. 상대방에게 믿음과 사랑을 주기 위해서는 보여줘야 한다. 매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일일 수도 있고, 걱정해주는 말일 수도 있다. ‘사랑한다, 믿는다’는 말을 채우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과 사랑을 종용받는다. 연인관계에서 서로를 절절하게 사랑해줘야만 하고, 친구관계에서 무조건적인 믿음을 보내야만 한다. 꼭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나에게 영화 <메기>는 이런 ‘해야 한다’를 해체하는 영화였다. 꼭 믿어야만 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의심이라는 카드를 꺼낸다. 윤영과 부원장은 관습적인 믿음을 해체시킨다. 그들은 산 넘고 물 건너 어렵사리 진실을 획득한다. 믿기 위해서 믿음을 확인하는 노동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확인한다. 윤영은 믿음 노동을 멈추기로 한다. 그리고 묻는다. ‘너 여자 때린 적 있어?’       


의심의 주체는 약자다. ‘뻗을 자리론’에 입각하면 딱 들어맞는다. 정희진은 원인을 찾아보고 고민하는 일은 약자의 몫이라고 했다. ‘왜 그 사람이 그랬을까’ 따위를 골몰하는 건 힘없는 이들의 노동이다. 강자는 이유가 없다. 그저 할 수 있었으니까 한 것뿐이다. 약자는 ‘왜’라는 질문에 꼬리를 물으면서 트라우마 속으로 들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지나가는 것이다. 영화 속 메기는 말한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덩이를 더 파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영화가 상정한 약자는 ‘불안한 청년’이다. 애인에게 혼날까 전전긍긍하는 성원은 동료가 도둑이라고 의심한다. 애인이 여자를 때렸을까 봐 초조한 윤영은 성원을 의심한다. 이 영화에서 빛나는 점은 여성과 남성이 느끼는 불안의 무게를 달리했다는 점이다. 여성은 맞을까 봐 겁내지만, 남성은 혼날까 봐 두려워한다. 둘의 무게를 다르게 다룬다. ‘청년’이라는 단어에서 여성은 배제되기 마련이다. 감독은 여성 서사를 중심에 두면서 여성의 불안을 축으로 가져온다. 싱크홀은 청년 세대의 상황을 대변한다. 싱크홀은 생뚱맞은 타이밍에 갑자기 생기는 게 특징이다. 감독은 싱크홀이 우리 세대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제 필요한 건 메기다.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구덩이를 인지해야 한다. 알아차리기 전엔 그것이 구덩이인지 아닌지 모른다. 영화에서도 윤영이 성원에게 “여자를 때렸냐”라고 묻자, 구덩이가 나타난다. 메기는 구덩이를 찾아낸다. 메기는 더러운 물속에 살면서도 지진을 인지하는 동물이다. 이 시대를 제정신으로 살려면, 우리는 메기가 돼서 구덩이를 지나쳐야 한다. 직감을 믿어야 한다. 메기를 직시할 용기 없을 때 꺼내보고 싶은 영화다.



ps. 촘촘한 행동으로 생긴 사랑은 의심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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