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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들렌 Mar 01. 2020

선택의 가능성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실이 꿰어진 바늘을 갖는 것을 더 좋아한다

초록색을 더 좋아한다

모든 잘못은 이성이나 논리에 있다고 단언하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

예외적인 것들을 더 좋아한다

집을 일찍 나서는 것을 더 좋아한다.

(중략)

시를 안 쓰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보다

시를 써서 웃음거리가 되는 편을 더 좋아한다

명확하지 않은 기념일에 집착하는 것보다

하루하루를 기념일처럼 소중히 챙기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에게 아무것도 섣불리 약속하지 않는 

도덕군자들을 더 좋아한다.

지나치게 쉽게 믿는 것보다 영리한 선량함을 더 좋아한다.

(중략)

만일에 대비하여 뭔가를 비축해놓는 것을 더 좋아한다.

정리된 지옥보다 혼돈의 지옥을 더 좋아한다.

신문의 제1면보다 그림 형제의 동화를 더 좋아한다.

잎이 없는 꽃보다 꽃이 없는 잎을 더 좋아한다

품종이 우수한 개보다 길들지 않은 똥개를 더 좋아한다.

(중략)

숫자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자유로운 제로(0)를 더 좋아한다.

기나긴 별들의 시간보다 하루살이 풀벌레의 시간을 더 좋아한다 

불운을 떨치기 위해 나무를 두드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얼마나 남았는지, 언제인지 물어보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

존재, 그 자체가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시를 안 쓰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보다

시를 써서 웃음거리가 되는 편을 더 좋아한다

명확하지 않은 기념일에 집착하는 것보다

하루하루를 기념일처럼 소중히 챙기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에게 아무것도 섣불리 약속하지 않는 

도덕군자들을 더 좋아한다.

지나치게 쉽게 믿는 것보다 영리한 선량함을 더 좋아한다." 

코멘트를 달 수 없을 만큼 이 부분이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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