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나는 자주 아이유 영상을 찾아본다. 아이유가 하는 말과, 가사가 이상하게 마음을 찌를 때가 많다. 아이유는 인터뷰에서 "사랑하지 않으니까 치사하지"라는 말이 정답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가 출연한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의 한 대목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드라마를 본 적은 없지만, 아이유가 언급한 대사가 공감이 됐다. "사람은 왜 그렇게 치사할까?"라고 이선균이 묻자, 극 중 정희(오나라)는 "사랑하지 않으니까 치사하지"라고 답했다.
K는 치사했다. 분명 마음이 변한 것 같은데 말은 하지 않고 행동만 달라졌다. 나도 거절과 제안을 못하지만, 가까운 사이에서 만큼은 마음을 말하고 싶었다. 우리는 그러기로 약속했다. 변화의 지점마다 나는 말을 건넸고, 변화에 적응했고, 새로운 방안들을 제시했다. 자꾸만 손을 뻗어야 하는 게 힘들었다. 그래도 나는 그의 상황을 진심으로 읽어주고 싶었다. 나에게 쌀쌀맞아진 게 분명히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수십 년을 다르게 살아왔으니까 그의 표현을 내가 못 읽는 걸 수도 있다고 그를 이해했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는지, 괴로웠는지는 신경 쓰지 못했다.
J도 치사했다. J는 내 생일날 본인의 생일을 축하해주지 않아 서운하다며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행복한 생일을 보내고 있을 내 기분은 안중에 없었다. 사실 나는 이미 J에게 서운했던 일이 많았고, 그 일은 상흔을 남겨서 관계를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축하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서서히 멀어지고 있던 참이었다. 우리가 멀어진 계기는 남자처럼 보이지만, 핵심은 나에 대한 태도였다. 나는 그때 이제훈을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보니 장동민을 닮은 A를 좋아하고 있었다. A 자체를 좋아했다기보다,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할 것 같은 공허함이 있었고, 그 자리에 A는 안착했다. 나는 J에게 내 사사로운 이야기를 공유했고, J는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내 얘기를 신나게 하고 다녔다. 나는 A에게 마음이 들킨 건 괜찮았다. 그치만 J에게 내가 어색함을 풀기 위한 안줏거리였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했다. 지금은 살다 보면 스무 살 언저리에 그런 실수는 할 수 있는 일이지 싶다. 그래도 그건 사랑은 아니었다.
요즘도 나는 치사함을 종종 느낀다. 우리는 아직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닌데 자꾸 어려움을 고백한다. 나를 가운데 놓고 싸운다. 정신을 차리면 '사실 이 사람 마음은, 의도는 그게 아닐 거예요. 사정이 있을 거예요'라고 말하고 있다. 이 사람 말도 맞고, 저 사람 말도 맞다고 말하고, 설득한다. 자기들은 모나게 하고 싶은 말 다하고, 나를 중재자로 만든다. 어휴, 치사해. 나도 입이 없어서 할 말을 안 하는 게 아닌데 말이지.
열등감을 건드리는 것도 참 치사하다. 백수라는 아픈 손가락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건드리지 않아도 밥 먹고, 숨 쉬는 일이 죄스럽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공부만 하는 삶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일인지, 내가 못했던 걸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잘 해내고 있는지, 내가 돈을 얼마나 쓰고 있는지를 대화의 주제로 삼는 건 좀 치사했다. 나쁜 의도가 없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다. 세상에 나쁜 사람이 어딨겠어.
간단하다. 사랑하지 않으니까 치사하다. 그들을 내 몸 안에 담으면서 앓기보다 "어휴, 치사해!"하고 지나가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나도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별도 달도 따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