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다경을 부잣집 딸로 설정했을까
'여적여'. 여자의 적은 여자. 한국에서 자주 쓰이는 밈이다. 드라마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최근에는 MBC 선거 보도에서도 "언니 저한테 불만 있어요?"라는 문구로 여적여 구도를 만들었다. '적'이라는 단어는 납작하다. 왜 그들이 갈등을 겪게 됐는지에 대한 맥락은 없다. 단순히 적으로 설정하면 캐릭터는 평면적일 수밖에 없다. 적에도 종류가 있지 않은가. 얄미운 적, 상종도 못할 적, 어떨 땐 괜찮은 적. 한국 드라마는 다양한 적을 철저히 외면했다. <부부의 세계>에는 다양한 적이 나온다. 남편을 뺏어가는 상간녀, 중간에서 말을 전하는 직장동료, 상간녀와 여행 간 옆집 친구. 꼽자면 더 많다.
적은 때론 편이 된다. 지선우와 친구의 관계는 주목할 만하다. 친구는 상간녀와 함께 부부동반 여행을 간다. 지선우는 이에 대한 복수로 친구의 남편과 잔다. 친구는 가식적인 너를 애초에 친구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고 단언한다. 지선우는 깨진 우정에 가슴 아파한다. "너를 친구로 생각했는데 슬펐다, 그러지 않았으면 덜 슬펐을 텐데"라고 말한다. 둘의 관계는 영영 끝인 줄 알았다. 친구는 지선우가 위험한 순간에 경찰차를 부른다. 고장 난 CCTV 대신 집 안에서 CCTV처럼 집을 살폈다. 지선우의 집을 맴도는 남성을 관찰했다. 여성은 안전을 기반으로 언제든 연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부부의 세계>는 '여돕여'가 돋보이는 드라마다. 지선우는 우연히 둘을 돕는다. 그들은 남자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여성들이다. 선우는 데이트 폭력으로부터 민현서를 구해준다. 거처를 제공해주고, 데이트 폭력남이 감옥에 갈 수 있게 도와준다. 최회장의 아내는 성병에 걸리고, 지선우의 정확한 진단 덕에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둘은 선우의 조력자가 된다. 결정적인 순간에 정보를 알려주고, 편이 되어 준다. 셋은 다른 계층 속에서 빌어먹을 남자들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남편이나 남친보다 스스로를 안쓰러워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현서는 선우에게 말한다. 자기를 구해준 것처럼 선생님도 빠져나오라고.
반면 드라마 속에서 남성 연대는 복수심을 기반으로 형성된다. 데이트 폭력남(이하 데폭남)과 불륜남이 힘을 합친다. 둘은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없다. 데폭남은 애인을 때렸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선우가 본인을 감방에 넣었다고 울부짖는다. 불륜남도 가정을 파탄내고 상처 준 것에 대한 죄책감이 없다. 단지 아들을 빼돌릴 생각뿐이다. 데폭남을 시켜 선우를 위협한다. 폭력으로 원하는 바를 얻어내려고 한다.
불륜 드라마에서 누가 더 나쁜 놈인가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중요하다. 자칫 이 설정을 삐끗하면 본격 꽃뱀 욕하기 드라마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여다경을 부잣집 딸로 설정한 건 영리했다. 여다경이 사랑만 바라보는 부잣집 딸이 아니었으면 이 드라마에서 가장 욕먹는 인물이 됐을 거다. 여다경은 얄밉지만 왠지 '얘 언니가 인생을 좀 살아봐서 아는데 저런 남자 가치 없어. 너처럼 다 가진 애가 왜 똥차를 타니'라고 말해주고 싶은 인물이다.
이 드라마의 화살은 가부장제 속에 남성을 향하고 있다. 바람피우는 남자에게 서사를 부여해주지 않는다. 그 시간에 선우의 복합적인 내면을 조명한다. 그러면서도 가부장제의 속성을 꿰뚫는다. 선우가 현서에게 데폭남에게서 벗어나라고 말할 때, 현서는 그가 불쌍하다고 말한다. 말도 안 되게 입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걔가 원래 그런 애가 아닌데 사는 게 힘들어서 그러는 거라고. 가부장제는 여성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면서 작동한다. 자기보다 상대를 더 불쌍하게 여기면서 폭력에 길들여진다. 폭력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회차가 거듭할수록 진이 빠지고 있지만, 현서와 선우는 사랑과 멀어지고 있다는 점은 환영할 만하다. 현서는 그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선우는 그와 이혼했다. 드라마에 바라는 작은 소망이 있다면, 사랑하니까 돌아가는 결말만은 아니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