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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들렌 Jun 15. 2020

최애 치트키

[나의 ost] feel alright - 짙은


내 인생에 치트키가 몇 개 있다. 러쉬 바디워시, 우드윅 향초, 찍어놓은 짤막한 동영상 등등. 스타크래프트로 치면 미네랄과 가스를 공급해주는 치트키가 있다. 바로 유림이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 곁에 있어줬다. 하루의 끝에서 여러 일들을 조잘거리고 있다.      


지난 주말에 우리는 곱창전골집에 갔다. 와구와구 전골을 먹고, 유림이가 찾아뒀던 예쁜 카페로 갔다. 전골집에서 카페까지는 오르막길로 16분 정도 걸렸다. 유림이는 택시를 타자고 했다. 나는 이 정도는 걸을 수 있다고 했고. 유림이는 “걸어갔다가 또 더위 먹었다고 하면 가만 안 둔다”라고 했다. 다행히 날씨가 덜 덥고, 생각보다 가까워서 더위 먹지 않고(죽지 않고) 카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유림이의 배려는 이런 식이다. 말투는 웃기지만, 행동이 세심하다. 조금 걸으면 더위 먹는 나를 이렇게까지 잘 알아주는 친구가 있을까. 


부산에 내려와서 같이 광안리에 갔다. 요즘 상태가 영 안 좋았던 나를 걱정했던 것 같다. 광안리는 내가 폭삭 내려앉는 시기마다 유림이가 함께 갔던 곳이다. 애인과 헤어져서 중도 휴학했을 때도, 기억은 안 나지만 다른 슬픈 날에도, 지금도 갔다. 같이 있다 보면 하찮은 일들이 생기고, 그날을 즐겁게 하고, 다음을 살아가게 한다. 3년 전 애인과 헤어졌을 때 유림이가 바다 앞에서 사진을 찍어준다고 했다. 그래서 섰는데 자꾸 꼬마랑 비둘기가 내 근처로 왔다. 그러다 시무룩하게 사진이 찍혔는데 그렇게 웃길 수가 없다. 

     

며칠 전 시민공원에 갔을 때도 비둘기가 우리 돗자리를 침범하려고 했다. 유림이는 새를 무서워한다. 내가 ‘처치해주겠어!’라고 말하고, 비둘기를 아주 소심하게 다른 길로 안내해줬다. 유림이는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웃기다고 했다. 당당한 척했지만 비둘기를 쫓아다니는 내 뒷모습이 하찮아서겠지.      

비둘기 쫓는 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건 판단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한다. 유림이는 언제든 나를 긍정해주고, 판단하지 않는다. 네가 그러면 그런 거겠지. 이렇게. 그 마음은 나도 비슷하다. 어쩌면 삶의 기준이 비슷한 걸 수도 있다. 아마 나는 얘가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오죽하면 네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생각할 것 같다. 물론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유림이는 자기를 잘 지키는 아이다.  

    

시민공원에서 유림이의 에어팟 프로로 음악을 들었다. 이리저리 선곡했다. 그러다가 어떤 노래가 나왔고,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 어떤 장면이 생각난다고 했다. 사람별로 붙게 되는 ost가 있다고. 이건 누구 노래라고. 


그랬더니 유림이는 자기 노래가 뭐냐고 물었고, 나는 망설임 없이 “니 노래는 짙은의 feel alright야.”라고 말했다.  



https://youtu.be/w_veh407BkY

feel alright - 짙은 

먼 거리를 걷다 지친 마음이
어둠 속에 눈물을 감추고

어디선가 다친 상처들이 
벌거벗은 채 세상을 만날 때  
 
you make me feel alright
고단한 하루에 끝에 서 있을 때 
you make me feel alright 
시간의 틈에서 머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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