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ost] feel alright - 짙은
내 인생에 치트키가 몇 개 있다. 러쉬 바디워시, 우드윅 향초, 찍어놓은 짤막한 동영상 등등. 스타크래프트로 치면 미네랄과 가스를 공급해주는 치트키가 있다. 바로 유림이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 곁에 있어줬다. 하루의 끝에서 여러 일들을 조잘거리고 있다.
지난 주말에 우리는 곱창전골집에 갔다. 와구와구 전골을 먹고, 유림이가 찾아뒀던 예쁜 카페로 갔다. 전골집에서 카페까지는 오르막길로 16분 정도 걸렸다. 유림이는 택시를 타자고 했다. 나는 이 정도는 걸을 수 있다고 했고. 유림이는 “걸어갔다가 또 더위 먹었다고 하면 가만 안 둔다”라고 했다. 다행히 날씨가 덜 덥고, 생각보다 가까워서 더위 먹지 않고(죽지 않고) 카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유림이의 배려는 이런 식이다. 말투는 웃기지만, 행동이 세심하다. 조금 걸으면 더위 먹는 나를 이렇게까지 잘 알아주는 친구가 있을까.
부산에 내려와서 같이 광안리에 갔다. 요즘 상태가 영 안 좋았던 나를 걱정했던 것 같다. 광안리는 내가 폭삭 내려앉는 시기마다 유림이가 함께 갔던 곳이다. 애인과 헤어져서 중도 휴학했을 때도, 기억은 안 나지만 다른 슬픈 날에도, 지금도 갔다. 같이 있다 보면 하찮은 일들이 생기고, 그날을 즐겁게 하고, 다음을 살아가게 한다. 3년 전 애인과 헤어졌을 때 유림이가 바다 앞에서 사진을 찍어준다고 했다. 그래서 섰는데 자꾸 꼬마랑 비둘기가 내 근처로 왔다. 그러다 시무룩하게 사진이 찍혔는데 그렇게 웃길 수가 없다.
며칠 전 시민공원에 갔을 때도 비둘기가 우리 돗자리를 침범하려고 했다. 유림이는 새를 무서워한다. 내가 ‘처치해주겠어!’라고 말하고, 비둘기를 아주 소심하게 다른 길로 안내해줬다. 유림이는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웃기다고 했다. 당당한 척했지만 비둘기를 쫓아다니는 내 뒷모습이 하찮아서겠지.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건 판단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한다. 유림이는 언제든 나를 긍정해주고, 판단하지 않는다. 네가 그러면 그런 거겠지. 이렇게. 그 마음은 나도 비슷하다. 어쩌면 삶의 기준이 비슷한 걸 수도 있다. 아마 나는 얘가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오죽하면 네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생각할 것 같다. 물론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유림이는 자기를 잘 지키는 아이다.
시민공원에서 유림이의 에어팟 프로로 음악을 들었다. 이리저리 선곡했다. 그러다가 어떤 노래가 나왔고,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 어떤 장면이 생각난다고 했다. 사람별로 붙게 되는 ost가 있다고. 이건 누구 노래라고.
그랬더니 유림이는 자기 노래가 뭐냐고 물었고, 나는 망설임 없이 “니 노래는 짙은의 feel alright야.”라고 말했다.
feel alright - 짙은
먼 거리를 걷다 지친 마음이
어둠 속에 눈물을 감추고
어디선가 다친 상처들이
벌거벗은 채 세상을 만날 때
you make me feel alright
고단한 하루에 끝에 서 있을 때
you make me feel alright
시간의 틈에서 머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