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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사유 Dec 23. 2023

웰빙을 넘어 웰다잉으로

 한동안 한국 사회에서 웰빙 열풍이 불던 때가 있었다. 잘 사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다가 어느샌가 웰빙과 더불어 웰다잉이라는 말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웰빙이라는 말을 한국어로는 ‘안녕’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고 한다. 잘 살기도, 잘 죽기도 어려워졌다고 생각하는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보고는 한다. 사실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이 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어쩌면, 없는 존재를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한국 사람들은 유독, 잘 사는 것에 민감한 것 같다. 미라클 모닝도, 갓생 살기도 다 그런 부류에 이야기들이 아니던가. 나는 그런 것들을 잘하지 못한다.     



이런저런 것들로 고민하고 있을 때, 그때 당시에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내게 조언을 해줬던 것이 기억이 난다.     

너무 많은 것을 손에 움켜쥐려 하면 힘이 풀려서 다 놓칠 거고.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 하나만 가지고 가려하면, 그땐 중요했던 것이 이제는 쓸모 없어지거나 볼품없어질 수 있어서 그 어딘가의 균형을 찾는 연습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 나도 아직 그게 잘 안돼. 그리고 중요하거나 중요해질 건 대부분 내 가까운 곳에 있더라고.


사실, 죽고 나면 잘 사는 것도 다 소용이 없어질 것이 분명한데 왜 이렇게까지 노력하나 생각할 때가 있다. 어차피 한번 살고 갈 건데 너무 고통스러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어린 날의 치기라고 생각한다.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는 당연한 이야기가 우리를 또 너무나 억압하는 것은 아닐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안부 인사를 돌리고 있다. 우리 너무 열심히 살지 말자는 말을 속으로 삼키는 요즘이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다 흔히 이야기하는 잘 사는 것보다는 꾸준히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큰 파도를 가진 사람은 아니라도, 작은 파도로 꾸준히 다녀갈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평생을 그렇게 살다 죽으면 그게 웰빙이고, 웰다잉인 것 같다.      



최근에 어릴 적 다니던 성당에 가서 가만히 성당을 둘러보았다. 어릴 적 내가 뛰놀던 공간들이 생각이 났다. 그때 내게 큰 사람이 되라고 하셨던 신부님도, 나를 위해서 기도했다고 내게 와서 말씀해 주시던 수녀님도 생각이 났다.


나는  너무나도 큰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라는 것을 그땐 왜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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