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한 시인의 유고시집을 읽었다. 나는 그 시인이 죽고 난 다음에야, 그 시인에 대해 접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백석이나 이상을 덕질하는 기분으로 이 작가를 덕질하게 되었다. 그 작가가 낸 에세이 한 권과 시집을 읽으면서 가만히 또 가만히 있는 법에 대해 배웠다.
요즘은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이별에 대해 너무 무감각한 시대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또, 사람들을 보면 누구보다도 잘 살고 싶어 하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인다. 사회는 죽음에 대해 무감각하길 원하는데, 그 구성원들은 그렇지 않다.
잘 살고 싶은 것은 누구나 그렇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래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 제일가는 부자로 사는 것이? 무엇이 정답일까? 나는 세상에 정답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도 언젠가는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나도 믿는 두 가지의 사실이 있다. 첫째,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둘째, 끝이 있으면 새로운 시작이 있다. 이건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태어났으면 죽을 것이고 죽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잘 죽기 위해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살고 죽는 일에 조금은 무감각하다. 단지, 만남과 헤어짐의 한 부류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삶에 책이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큰 원동력이 된다. 책을 잘 읽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꾸준히는 읽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꾸준히 사랑하는 법을 공부하는 중인 것 같다. 글을 쓰는 사람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랑 없이는 글을 쓸 수 없다. 글은 사랑이 전제된 예술활동이라는 것이다. 사랑 없이는 글을 쓸 수 없다. 그 사랑이 맹목적인 사랑이 아닐지라도, 증오에 가까운 감정일지라도 사랑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어떤 것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
사실 요즘은 독서인구가 줄었다느니 출판계의 불황이라느니 책에 관한 불행한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것 같다. 사랑이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고민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