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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한 장의 사진일 뿐인데

사람들은 동일한 사진에도 다른 느낌을 이야기한다.



어느 날, 나를 끌어당기는 한 장면의 사진을 찍었다. 깨진 벽돌 틈 사이로 민들레와 제비꽃이 나란히 피어 있는 모습이었다. 노란 민들레 두 송이는 한 쌍으로 활짝 피어나 있었고, 옆에는 작고 소박한 제비꽃 한쌍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 사진을 본 사람들은 대개 민들레를 먼저 본다. 밝은 노란색은 사람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리고는 제비꽃을 발견하며 이 두 꽃이 만들어내는 대조적 풍경에 감탄한다. 이 사진을 두고 많은 이들이 희망과 생명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저 민들레를 꺾어버리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오래전 내 기억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1992년, 유학길에 오른 나는 낯선 땅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유학을 로망이라 하지만, 내게는 늘 고단한 싸움이었다. 기숙사에 홀로 남겨진 주말이면, 방 안에 가득 찬 적막이 견디기 어려웠다. 외롭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버려진 듯한 느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것 같은 나 자신이 더 서러웠다.


어느 일요일, 기숙사 우편함으로 가는 길이었다.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며 물을 뿌리는 소리가 들렸고, 발등 높이의 작은 꽃들이 물방울을 머금고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걸음을 멈췄다. 초록빛줄기 위에 뻗은 노란 꽃잎들, 물방울이 맺힌 모습이 정말 완벽했다. 하지만 그 완벽함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내 마음은 고단하고 상처투성이인데, 그들은 지나치게 건강해 보였다. 다닥다닥 붙어 자신을 뽐내는 꽃들에게 질투가 났다. 나도 모르게 그중 하나를 꺾었다. 그리고 노란 꽃잎들을 손끝으로 하나씩 뜯었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던 그 행동이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내 내면의 고통이 그것들을 질투했고, 스스로의 상처를 꽃 위에 투영했던 것 같다.


사진 속 민들레를 꺾고 싶다고 말한 내담자의 마음을 듣고, 나는 오래전 나의 그 순간이 떠올랐다. 왜 민들레를 꺾고 싶었는지,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꽃에 담긴 생명력이 자신의 고단함을 더 부각했을 수도 있고, 노란색에 대해 특별한 기억이 있을 수도 있다. 누군가의 마음속 사연은 그가 직접 꺼내기 전까지 완전히 알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을 억누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다. 우리는 때때로 "괜찮다"는 주문을 외우며 감정을 덮어두려 하지만, 정작 그 괜찮음이 진짜 괜찮음을 의미하지 않을 때가 많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예고 없이 폭발하거나 자신에게로 화살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니 어떤 감정이든 터져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꽃을 꺾고 싶은 마음도, 그 마음 뒤에 숨겨진 이야기도 모두 소중하다.


나는 사진을 찍으며 마음속 풍경을 기록한다. 노란 민들레와 제비꽃이 함께 피어난 풍경은 사람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누군가는 희망과 생명력을 느끼고, 또 누군가는 고독과 상처를 떠올린다. 그 차이가 나는 소중하다. 사진은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매번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느 날 내담자가, 이 사진을 보고 정반대의 감정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때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진을 어떻게 느낄지는 보는 사람의 몫이다. 누군가는 희망을, 누군가는 외로움을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상담자로서 나는, 다른 사람이 인식하지 못한 특별한 무언가를 발견한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이 느낀 감정에는 자신만의 독특한 삶의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가 있다. 그 시기에 사진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카메라를 든다. 나와 함께하는 식물들을 찍고, 길에서 만난 꽃들을 담는다. 그것들이 어제와 다른 오늘을 보여주는 것처럼, 사람들도 조금씩 다른 내일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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