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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섬 Jun 28. 2019

새해 인사

이책이글 88회_이글_청춘은 느릿한 거리를 걷는다_190121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동안 건강히 잘 지내셨는지요?

저는 걱정해주신 덕분인지, 올 한해도 별 탈 없이 보낼 수 있었습니다.


보통 연말에는 한해를 돌아보면서 정리도 하고 반성도 하고, 어찌 됐든 마무리를 하곤 했는데 올해에는 그마저도 그만두었습니다. 매년 하는 정리, 반성, 다짐으로 제가 얼마나 나은 사람이 되었을까요? 제 삶은 얼마나 가치있어졌을까요.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살라고 가르쳐주신 선생님께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의식적으로 뭔가를 챙기는 일이 다 의미 없게 느껴졌습니다.


오늘은 약속 없는 주말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매주 약속이 있다가 오랜만에 약속이 없는 것 같지만, 약속은 항상 없습니다. 그래도 일 년의 마지막 주말인데, 누구라도 만나볼까, 뭐라도 해볼까 하다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무언가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처음으로 선생님께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약속이 없는 게 도움이 될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청춘은 느릿한 거리를 걷는다고. 지나고 보면 지독히 빠르게 지나간 것 같지만, 그 당시에는 나이를 먹는 게 도저히 상상이 안될 만큼 느린 하루가 반복될 거라고. 저 역시 그때는 몰랐습니다. 더이상 느릿하지 않은 지금에 와서야 그때 하신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선생님 말씀을 함께 들었던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선생님은 혹시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의 저희는 꽤 가까웠습니다. 서로 간의 거리라고 할만한 공간도 없었지요. 누구든 손만 뻗으면 닿을듯한, 사정거리 안에 있었습니다. 계속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맥주 위의 거품같이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거품이 그렇게 금방 꺼질지도, 친구들이 그렇게 멀리까지 갈지도 몰랐습니다. 아니 우리가, 누구든, 사람이 거기까지 갈 수 있는지도 몰랐고, 거기라는 곳이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저만 몰랐겠지요. 느릿해서 느긋했던 저의 거리는, 제가 계속 느릿한 사이 친구들이 달려나간 거리만큼 벌어져 버렸습니다.


청춘이라는 말은 얼마 정도 비겁하게 쓰이는 것 같습니다. 청춘이라는 말은 이미 어른이 된 사람을 한정된 시간과 공간 안에 가두고, 아직은 그 시기를 즐겨야 한다고, 무엇도 아직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존재로 유예시킵니다. 그럼 여전히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있는 저도 아직 청춘일까요.


선생님.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여전히 잘 지내고 계셨겠지요?

우리는 보통 어떤 순간에 꼭 필요한 말을, 한참이 지난 뒤에야 깨닫곤 합니다.

선생님. 여전히 잘 지내고 계신다면, 지금이라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그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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