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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륜 Feb 20. 2017

언제 가도 맛있는 부산

짧고 굵고 알찬 부산여행

대학생 때, 용돈을 아껴서 매년 한 번 정도씩은 부산에 갔었다.

당시에 나는 영화제를 미친듯이 다니는 대학생이었다. 부산영화제 시즌에 숙박비를 아끼려 새벽에 노숙을 하더라도 가서 영화를 보곤 했는데, 이번에는 영화가 아닌 콘서트를 보기 위해 짧고 굵게 1박2일로 다녀왔다.

하지만 결론은 콘서트보다도 먹으러 다녀온 부산여행이었다.

집근처에 SRT가 개통되면서 너무너무 편하게 갈 수 있었다. KTX는 집에서 서울역까지 가는게 너무 멀었고,

강변에서 출발하는 고속버스는 너무 오래걸려 힘들었는데 SRT로 모든게 일단락된 기분이다. 같이 간 친구들 모두 같은동네에 살아서, 아침에 각자 집에서 런닝맨 보고 느긋하게 있다가 수서역으로 왔다. 어마어마한 발전이다.

 

이번에 같이 부산에 간 친구들은 대학때에도 종종 함께 부산에 왔었고, 2015년에도 같이 부산에 왔어서 다들 초행길은 아니었다. 늘 도착하면 부산역 앞 초량밀면을 가곤 했는데, 이번에는 뭔가 새로운걸 먹고싶어서 검색하다 찾아낸 게장!!!


진짜 너무너무 맛있게 먹었다. 1시쯤 도착하자마자 부산역 근처에 있는 게장집으로 가서 반반세트를 시키고 비벼먹을 알밥과 낮맥주를 시켰다. 간장게장은 짜지않고 삼삼한게, 비닐장갑 끼고 꾹꾹 짜서 밥에 비벼먹으니 녹진하게 입안을 착 감싸는게 세상 황홀했다. 양념게장도 너무 맵지않고 달달하니, 밥 한술 먹고 양념게장 한입에 쪽-빨아먹으면 천국이었다.


게장을 먹고, 전국에서 가장 복권당첨이 많이 되었다는 곳에 가서 복권을 사고, 숙소에 짐을 놓고 나와서 전통찻집을 찾아갔다. 해운대 달맞이길 언덕 위에 있던 <비비비당>이라는 곳인데, 인테리어가 너무 맘에 들었다.

내부는 한옥처럼 꾸며놓았는데, 테이블을 여유있게 배치해놔서 사람이 많아도 시끄럽다거나 번잡하지 않았다.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도 좋았고, 바다가 보이는 뷰도 좋아보였다. 우리는 좌식테이블을 배정받았는데, 집기들도 깔끔하고 어디 하나 군더더기가 없는 인테리어였다.

여러 차도 있었지만 호박식혜를 시켰다. 살짝 얼린 듯한 놋그릇에 나온 호박식혜는 예상했던 것보다 되직했지만, 호박도 잘 삶아져있었고 너무달지않아서 맛있게 먹었다. 약간 호박죽같은 느낌이 강했다. 같이 나온 백설기 다식도 괜찮았다. 호박이 달달하니 안에 팥이 안들어간 백설기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흡족했다.

전반적인 인테리어가 정말 깨끗하고 인상적이었다. 나이가 드는건지, 한옥과 한복, 한식같은 우리의 것이 점점 더 예쁘게 느껴진다. 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른, 우리만의 멋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은데 이 찻집은 딱 그런 곳이었다. 그러면서도 부산의 바다와, 현대적인 감각이 잘 조화된 곳.


비비비당에서 달맞이길을 내려오는 시간이 우연히 해 지는 시간과 얼추 맞아, 예쁜 색깔의 하늘을 보았다.

서울보다는 따뜻했지만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라 내려오니 조금 추워,

택시를 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수육에 술국 하나를 시켜 나눠먹었다.


저녁을 간단히(?!) 먹은 이유는 공연 후에 회와 치킨파티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

'밀치회' 는 정말 새로운발견 이었다. 밀치가 멸치의 사투리인줄 알았던 서울여자 세명은, 밀치가 '가숭어' 라는것도 신기했는데 이게 이렇게 맛있는 생선인줄 몰랐다.


방어처럼 살짝 기름지고 씹는맛도 있는데 방어보다는 조금 더 신선한 느낌?  광어도 진짜 살이 쫀득하고 너무 맛있었다. 확실히 서울에서 먹는 것과는 달랐다.

치킨은 숙소1층 또래오래에서 진리의 갈릭반 양념반으로 주문.

셋이 적당히 소맥을 말아먹으며 회와 치킨을 정말 맛있게 먹고, 씻고 꿀잠을 잤다. 이젠 다들 밤새 놀생각은 꿈도 못꾸고, 어딜가나 잘 자게된다. 나이를 먹었다는거지-


다음날 느즈막히 일어나서 뒹굴거리다가 체크아웃시간에 맞춰 나와서 간 곳은 라오스 샌드위치를 파는 곳이었다. 숙소에서 걸어서 멀지않은 곳에 있었는데, 콥샐러드가 진짜 맛있었다. 라오스샌드위치도 처음 먹어봤는데, 바게트같은 빵 안에 양파절임과 베이컨, 햄, 야채, 계란후라이가 들어있다. 이것도 정말 맛있게먹었다. 내용물이 많아 비닐장갑을 끼고 먹는데, 어쩐지 이번 여행은 첫날 비닐장갑 끼고 게장 먹은 것부터 시작해서 또 비닐장갑으로 끝나는 여행 같다.


라오스샌드위치 파는 곳은 인테리어가 독특했다. 1층에서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가면, 이런 독특한 좌식쿠션들이 놓여있는데 천장이 낮아서 들어가기 좀 불편했지만 일단 들어가고 앉으니 세상 편했다. 두 다리 쭉 뻗고 브런치를 먹기란-


게다가 라오스 맥주인것같은데, 모닝맥주까지 곁들이니 신선놀음이 따로없었다.


늘 부산에 오면 먹는 것들이 있었다.

밀면, 돼지국밥, 복국, 꼼장어 같은 것들- 부산의 상징같은 음식들인데,

이번에는 토요일 오후1시반에 도착해서 일요일 오후3시반에 떠나는 짧은 일정인데다, 늘 먹던 부산의 상징들 말고 좀 독특한 것들을 먹고 온 여행이었다.


이런 음식이건 저런 음식이건 어쨌든 다 맛있었다. 어쩌면 '부산'으로 떠나서 맛본 음식들이었기에, 무얼 먹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여행자는 모든 음식을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먹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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