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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륜 May 24. 2016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건 남이 차려준 밥상

노하우위크 대만편을 다녀와서

세상 어느 여자가 '남이 차려준, 예쁘고 맛있는 밥상'을 싫어하랴.

한번쯤 주방 앞에 서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음식을 맛있게 하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 음식을 예쁘게 담아내기도 쉽지 않다. 연애할 때야 아기자기 조물조물 도시락을 만들어 눈도 붙이고 입도 붙이고 해서 감질나는 음식들을 애인에게 자랑하지만 (실제로 맛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다) 오래 산 부부가 음식의 담음새를 신경쓰기보다는 맛있게, 푸짐하게-를 중점에 두는 걸 보더라도 '예쁘고 맛있는 음식'은 요리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꼭대기에 위치하지 않았나 싶다. 도달하기 어려운 고지이자 가장 쉽게 미끄러져 내려올 수 있는 정점의 분야.


나도 한때 그 정점에 도달하고 싶어서 도시락도 싸고, 예쁘게 갖춰 먹어보기도 했지만 점점 일상에 지치고 내 몸 하나 간수하기 힘들어지다 보니, 한동안 그 욕구를 잊고 지냈다. 우연한 기회에 예쁘게 갖춰진 케이터링을 보기 전까진.


청정원에서 <노하우 위크> 라고 여행작가들과 콜라보로 진행한 행사가 있었다.

내가 신청한 줄도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당첨되어 다녀오게 됐는데, 이 두시간의 행사가 나의 내년도 여행 목적지를 정해줬고, 음식에 대한 열망을 다시 키워줬고, 이 두가지를 합해 '내년도 여행가서 먹을 것' 들에 대한 가이드도 제시해줬다. 한마디로 그냥 '먹고싶은게 많아졌다' 는 얘기다.

예쁘게 꾸며진 행사공간과 깨끗한 주방. 주방이 잘 정리된 것에 묘하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반짝반짝 그림자가 지는 대리석 상판에 깔끔한 수납장, 물기가 싹 닦인 개수대. 나중에 결혼을 한다면 주방만큼은 꼭, 내가 원하는대로 리모델링을 할테다. 그래야 밥 할 맛이 나지.

하이라이트는 청정원에서 준비해준 케이터링이었다. 기본적으로 샐러드나 간단한 핑거푸드가 너무 예쁘게!!! 준비돼있었다. 내가 가장 감명받은건 여행작가에 맞춰, 그 나라 음식을 준비해놨다는 점이다. 나는 대만 강의였기에 대만의 전통 샤오츠인 펑리수, 그리고 차오미펀과 대만식 장조림 밥이 준비돼있었다. 저 고기조림을 얹은 밥은 내가 타이난에서 한달 공부할 때, 진짜 자주 먹던 음식이다. 아주 저렴하면서도 맛있어서 같이 수업듣던 친구와 함께 뻔질나게 사먹었다. 그걸 여기서 다시 보다니..!!

잘 차려진 케이터링을 무너뜨리고 내 그릇에 담아오는 일은 좀 미안했지만, 역시 남이 차려준 예쁜 밥상은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잠깐이지만 내가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무슨 고급진 코스요리나 드레스업 하고 먹은 레스토랑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찌보면 사람은 참 단순한 동물같다. 특히 나는 더. 좋다고 해주면 더 좋고, 싫다면 더 싫고, 예쁘다 예쁘다 하면 더 예쁜 짓 하고싶고, 맛있는 것 먹여주면 금방 헤헤거리는.

대만에 다녀온지도 벌써 6년이 지났다. 올해 유럽여행을 취소했으니 내년에는 절치부심하여 대만을 한바퀴 돌아야겠다. 일행이 있다면 좋겠지만 없어도 좋다. 가서 예쁜음식 많이 먹고, 더욱 헤헤 거리며 돌아올테다. (영국은 그러기엔 너무...음식이..쓰레..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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