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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륜 May 28. 2016

어릴적 로망, 하지만 금방 질려버린

입사 후 취미생활 네번째, 발레와 요가

작디 작은 체구 위로 하나같이 분홍색 레오타드를 입히고 살구색 스타킹을 신긴다.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위에 아무것도 걸쳐주지 않은 채로 아파트 상가를 거닌다. 마치 "우리 아이좀 보세요, 작고 여리고 참 어여쁘죠, 나는 아이를 발레학원에 보내고 있습니다, 딸을 가진 엄마니까요"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여자아이는 발레, 남자아이는 태권도 학원에 보내는 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개월수에 맞춰 예방접종을 시키고, 유치원을 보내고 8세가 되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것처럼 하나의 코스가 되어버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한번도 연분홍색 소녀소녀한 레오타드를 입어보지 못했다.


20년도 훨씬 전, 유치원에 다닐 때의 나는 숏커트를 했다. 

엄마들이 하나같이 여자아이들의 머리를 기르고, 양갈래로 묶어줄 때 나는 남자애마냥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원해서 자른건 당연히 아니었다. 엄마의 취향이었다.


우리엄마는 나를 발레학원에 보내놓고도 다른엄마들과는 조금 다른취향의 레오타드를 사줬다. 

보통의 아이들은 연한 분홍색에 치마가 달린 레오타드를 입거나, 소라색의 치마달린 레오타드를 입었다. 내 레오타드는 그 학원에서 단 한명도 입지 않은, 진하디 진한 진달래빛이었다.


여섯살 아이의 눈에도 그 레오타드는 예쁘지 않았고, 다른 친구들이 입는 연분홍색 레오타드와 니트워머를 입고싶었다. 고학년 언니들이 입는 땀복도 왠지 멋있어보였다. 하지만 한번도 사달라고 조르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아쉬움이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꽤 오래 발레를 했었다. 보통 1~2년만 하고 그만 두는데, 나는 초등학교 4~5학년 정도까지 했다. 같은 학원은 아니고, 초등학교 고학년 때에는 개인레슨을 받았다. 잘한다 잘한다 칭찬만 받다가, 모 발레단에 입단시험을 보고는 장렬히 떨어졌다. 친구가 활동하고 있던 발레단이었다. 친구가 부럽고, 떨어졌다는 사실에 속이 상하고, 그 와중에 콩쿨을 권유한 선생님이 밉고, 돈이 많이 들어가야 한다는게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그만뒀다.


회사원이 되고 취미로 다시 시작하고싶은 것들을 꼽으라면, 악기와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발레였다.

정규직 전환이 확정되기 전이라 좀 부담스러운 비용이었지만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너무 좋았다. 발레를 다시 배운다는 것때문이 아니라 이제야 비로소 내가 원하는대로 입을 수 있다는 생각 떄문이었다. 어릴 때의 분홍분홍한 레오타드보다는 새까만 입시용 레오타드가 더 '까리'해 보였고, 왠지 까만 쉬폰을 두르면 더 멋있을 것 같았다. 니트워머도 두개나 샀다. 가끔은 '더더더 까리' 해 보이려고 까만 레깅스에 까만 니트를 걸쳤다. 더 '잘하는 언니' 처럼 보이지 않을까 해서.



복장만 프로였던 나는 몇달 채 지나지 않아 갖가지 핑계를 대고 그만뒀다. 집이 너무 멀다, 회사가 규칙적이지 못하다, 겨울이라 춥다, 땀흘리고 바로 찬바람 쐬면 감기걸린다-는 이유로. 그냥 '복장 갖추기'가 달성되고 나니 더이상 미친듯한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또 내 하찮은 근력을 매번 거울로 보는 것도 고통이었다. 현실을 회피하고 금방 도망가는건 내 고질적인 문제기도 하다. 


운동은 해야겠기에, 집 바로 앞에서 요가를 배우기로 노선을 돌렸다. 이유는 '많이 움직이는 운동이 싫어서' 그리고 '어쨌든 유연성은 기를 수 있을 것 같아서' 였다. 금방 질리기는 이번에도 마찬가지긴 했다. 1년을 등록하라는 직원의 말에 "아 결혼하고 외국나갈거예요" 라는 핑계로 겨우 6개월만 등록해놨다. 천만번 잘한 결정이다. 

다행히 그때 산 요가복은 지금 크로스핏을 하면서 잘 입고있다. 3개월 크로스핏이 끝나면, 다시 발레나 요가로 돌아갈거다. 천만번 생각해도 나는 하나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아니다. 평생 그럴것같다. 20년을 앓아왔던 발레도 금방 질려하는 여자다. 


좀 한심하지만, 그래도 계속 번갈아가면서 하다보면 언젠가는, 어릴적 꿈꾸던 그 단계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이 마흔쯤 되면 토슈즈를 신고 발란스를 잡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꿈꾸는 건 자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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