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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륜 Jun 22. 2016

토할때까지 운동을 하고나면

직장인 취미생활...이라기엔 너무 장벽이 높은 크로스핏

운동은 모름지기 쫙쫙 늘려주고 쭉쭉 뻗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트레칭의 개운한 맛, 거기에 약간의 근력운동을 더하는 요가나, 은근히 힘이 많이 들어가지만 한없이 우아하고 예쁜 자세를 잡으며 근육을 조금씩 늘리는 발레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운동이었다.


제대로된 근력운동이라고는 수능 끝나고 누구나 그러하듯, 헬스장 3개월을 끊어놓고 몇번 가지 않는 코스를 밟았던 때와 체대생이었던 전남친에게 PT를 몇번 받았던게 전부다. 하지만 영 재미를 못붙였다. 쇠붙이를 들고 밀고 돌리는 일들이 내게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어느날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크로스핏을 등록했다.

아마도 요가와 발레만 전전하던 내 운동생활에 뭔가 변화를 주고싶었고, 집근처 사는 동생이 크로스핏을 재밌게 하고있다고 하여 마음이 동했던 것 같다.  크로스핏이 정확히 뭘 하는지도 모른채 그냥 소셜에서 보고 등록을 해버렸다. 그것도 무려 100일 프로젝트를.


이제 1/3쯤 지나왔는데, 정말 '토할 때까지 운동한다' 는게 문자 그대로 어떤 의미인지를 실감하고 있다.

내가 다니는 크로스핏 박스는 레벨별로 나누어 수업을 하는데,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천천히 체력을 올리기 위해 조금씩 새로운 기술도 익혀가고, 이런저런 운동방식을 통해 지루하지 않게끔 스케줄을 짠다. 어떨땐 공을 들고하고, 어떨땐 박스 위로 뛰고, 달리기를 하고 조정도 한다. 철봉에 매달리기도 하고 푸쉬업이나 버피, 윗몸일으키기, 스콰트는 기본이다.


무얼 하건, 그래도, 결론은, 너무 힘들다.


나는 주로 밤10시 타임에 가는데, 이시간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많아야 4명정도가 하게된다.

어떤날은 혼자 할 때도 있다(그럴땐 진짜 코치님이 나만!보고있기때문에 요령도 피울수가 없고..죽을 맛이다)


애초에 근력이 없는 몸뚱아리이다보니, 첫 라운드는 의욕넘치게 진행을 해도 이게 반복되면서 스피드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다.


특히 스콰트나 볼클린, 쓰러스터같은걸 할 때엔 내 허벅지가 마음처럼 제어가 안되고,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지경이 된다.


운동을 갔다 올 때마다 근육통을 느끼고 다음날, 다다음날까지 근육이 뭉쳐있는걸 느끼면서 '아 운동 제대로 됐구나' 라는 생각은 들지만, 사실 갈 때마다 너무 힘들기때문에 운동 가는게 영 재밌기만 하지는 않고 마음에 부담이 된다.


얼마나 힘든 정도냐면, 매번 끝날 때마다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데 이게 비유가 아니라 워딩 그대로다.

오늘은 일부러 일찍 퇴근해서 저녁을 일찍 먹고, 세시간 후에 운동을 갔는데도 불구하고 운동 끝나고 나서 정말 다 게워냈다.


(여담으로, 오늘 운동 후에 빌딩 엘리베이터가 말썽이었다. 나는 토하러 화장실 가느라 늦게 나왔는데, 내 앞에 내려가서 엘베를 타던 분이 혼자 갇혀버렸다. 위험한 상황이었다. 후들거리던 허벅지를 잡고 계단으로 어찌어찌 내려가던 내가 그분이 엘베 문을 두들기는 소리를 듣고 119를 불러드렸다. 결국 무사히 그분을 구출?!하고는 집에 왔다. 회식중이던 애인은 내가 막 놀래서 119 얘기랑 토했다는 얘기를 두서없이 보냈더니 자기가 더 놀랐는지 전화가 바로 왔다. 아마도 내가 갇혔다고 봤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무튼 우리의 결론은 운동 세게 하지 말자는 거다)

오늘은 철봉에 매달려서 무릎을 올리는 니-업 동작을 반복하다가 결국 손바닥이 까졌다.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다.


하지만 이런 운동을 해본다는 자체는 나름의 의의가 있다. 내가 젊을 때가 아니고서야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운동이고, 저질체력이지만 '뭔가 오늘도 열심히 살았구나, 다 쏟아붓고 드디어 끝이 났구나' 라는 느낌이 들 만큼 강렬하게 운동을 하고 나서의 성취감을 조금은 맛본다.


100일 프로젝트는 8월 말까지 진행된다.


이 기간이 끝나면 아마 나는 크로스핏을 다시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재미를 붙인 사람들은 이만한 중독성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운동을 통해 얻고싶은 것에 '정신적인 안정과 마음의 평화'도 있기 때문에, 내게 부담이 덜 되는 요가나 발레로 다시 돌아가려 한다. 적어도 '운동 끝날 때마다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다시 느끼기는 싫어서.


아쉽게도 크로스핏은 취미로 남지는 못하게 됐지만, 올해의 여러 시행착오중 하나로 남은것으로 충분하다...

친듯이 쇠붙이를 들고 타이어를 쳐대던 너를 아마 나는 평생 이해하지 못할 팔자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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