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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륜 Jun 18. 2016

레슨일지#3.약도 없다는 장비병

병원 오케스트라 합류 &낙원상가 찾아 악기 점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종종 장비병이 도진다.

운동을 한다거나 무언가를 만들고 싶을 때, 혹은 책을 읽거나 악기를 잡을 때.


누구나 그러하듯 인터넷을 찾아 검색을 하다보면 잘 모르던 물건들을 알게되고, 예쁜게 눈에 들어오고, 그러다보면 하루종일 그걸 사야만 하는 이유를 생각하느라 머리를 팽팽 굴리게 된다. 일종의 자기합리화 과정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돈잡아먹는 하마'라는 전자기기 장비병은 도지지 않았지만,

요 몇주동안 고민하던 일이 있었다. A클라리넷과 악기가방, 리드케이스를 살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A클라리넷은 병원 오케스트라 악보를 받으면서 구입을 살짝 고민했었다.

브람스 협주곡 네 악장 중 두 악장의 악보가 A클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 고민할 여지를 주지 않을만큼 비쌌고(200만 원 이상이 필요했다) B♭클라리넷 악보를 찾으면서 일단락됐다.

악기상에 전화해서 중고가도 물어보곤 했지만 중고로 나온게 3~400짜리 악기들이라 Fail.


취미생활에 거금을 턱턱 쓰시는 장비병 선배님들 (특히 카메라 등등..) 정말 존경합니다.. 소녀 손떨려서 차마 못사겠어요..

A클라리넷은 포기했지만 포기할 수 없던 두가지가 있었으니,
악기가방과 리드케이스다.

악기가방은 예전에 쓰던게 오래돼서 고리가 뜯어져버렸고 겨우 지퍼고리같은데에 끈을 연결해서 메고 다니려니 균형이 안맞고 지퍼가 자꾸 미끄러졌다.


보다못한 레슨선생님이 낙원 가실때 하나 사시라고 ㅋㅋㅋㅋㅋ Altieri 정품은 많이 비싸지만 국내제품 비슷하게 많이 나오는데 잘나온다고.. 해서 오늘 악기 점검차 낙원에 들렀을 때 구입! 배낭으로도 쓸 수 있는 가방이다.


내가 가지고있던 가방이 Altieri 꺼였는데, 10년 전에 내가 그 비싼 가격을 주고 샀을리는 없고 누군가한테 선물을 받았었나보다. 가격을 알고는 조금 아까웠지만 (하드케이스도 아니고 소프트케이스 가방이 15만원이 넘다니...) 국내제품은 같은 칼라 같은 디자인에 1/3값이라 뒤도 안돌아보고 질렀다. 이제 어깨 아프게 한쪽으로 안들고다녀도 된다.

리드케이스도 하나 샀다. 그 전에는 그냥 은색 틴케이스에 들고다녔는데, 악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확실히 나랑 잘 맞는 리드가 있고 아닌 리드가 있어서, 연습용으로 쓸 것과 공연용 혹은 합주용으로 쓸 것을 구분하느라 케이스가 꼭 필요해졌다. 다행히 비싸지도 않아서.. 오늘 악기가방 사면서 같이 구입했다.

두달쯤 전에 악기 전체수리를 맡기면서 인연을 맺은 낙원악기상가는 어느새 '자주 들르게 되는' 공간이 됐다. 클라리넷 특성상 한번 전체수리를 받고나면 정기적으로 악기상을 찾아 점검을 받아야 한다. 사람마다 키를 누르는 압력이 다르고, 어떤 키는 많이 힘을 줘 금방가라앉고, 어떤 키는 또 그렇지 않고-


클라리넷은 주기적인 점검뿐만 아니라 소모품도 필요한지라 한두군데 악기상을 알아두면 좋은 것 같다.

나는 클라리넷 수리는 브루노뮤직에서 하고, 소모품 구입은 근영악기에서 한다.


브루노뮤직은 처음에 악기수리 관련해 포털에서 검색하면서 알아보다가 사장님이 클라전공이신데다가 수리받았던 사람들의 후기가 있어서 방문했는데 클라리넷에 대한 애정, 악기 수리에 대한 자긍심이 있으신 것 같아 좋다.


오늘 공연이 있다고 하셨는데, 본인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게 적성에 안맞는다고 하셨을 때 묘한 충격이 있었다. 악기를 전공한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게 안맞는다고 느꼈을 때엔 나름의 고민과 고충이 심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매우 즐겁게 악기수리를 하시는걸 보며, 적성 잘 찾으셨다는?! 느낌을 받았다.


근영악기는 악기 레슨 선생님이 추천해주셔서 갔는데, 레슨선생님이 자기 이름 팔면 잘해주실거라고?! 했지만 사실 나는 가격 깎는 재주가 없다. 다만 갈때마다 친절하게 대해주시고, 일부러 비싼걸 권하지 않고 국내껏도 충분히 좋다며 내 통장 잔고를 지켜주셔서.. 왠지 신뢰가 간다. 가격도 인터넷에서 알아보는 것보다 조금씩 싼 것 같다.


낙원은 맨날 2층만 가보다가 오늘 처음, 3층 전문악기샵을 갔는데 2층은 약간의 호객행위같은게 있어서 조금 부담스러운 느낌이 있지만.. 3층은 정말 '아는 사람들이 가는' 곳 같다. 아코디언 전문샵, 일렉기타 전문샵 등이 있었는데, 호객행위같은것도 전혀 없고 조금 차가운 느낌이었다. 잘 모르면 가면 안될 것 같은 기분-


오늘은 레슨받는 내내 '낙원을 갈까 말까' 하는 고민을 했다.

악기 수리가 길어져서 며칠 맡겨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매우 번거로웠고, 스포츠 레깅스에 운동화 신고 시내(?!) 까지 나가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하지만 장비병도 해결하고 겸사겸사 기분전환할 겸 들렀는데 역시나 새로 장비를 들이고 나니 의욕 게이지가 급상승했다. 얼른 담주에 악기들고 병원 가고싶다.


레슨선생님이 "테크닉적으로는 문제 없는데 호흡이 약하다. 이제는 사소한게 모여서 큰 그림을 그릴 때다" 라고 조언하셨다. 호흡을 어떻게 늘리지, 나는 폐가 작은데 ㅠㅠ 중학교때 오보에를 했던게 습관처럼 남았는지, 마우스피스 잡는 방법도 자꾸 오보에리드 물듯이 하게 된다.


아-그러고보니 오보에에 대한 로망도 사그라들지를 않는다. 수요일 오케스트라 첫연습 때 옆에 앉았던 오보에 전공생 덕분에 오보에앓이도 시작됐다. 그때 좀 열심히 배울걸. 매끈하게 빠진 악기와 날씬한 리드가 너무 매력적이다. 꽁꽁 묶은 리드 사이로 뿜어지는 뱃고동같은 소리도 섹시하게 느껴진다. 하나에 빠지면 금방 그 속에서 허우적대는 '금사빠' 인 내 머리속에, 한동안은 악기가- 특히 클라와 오보가 크게 자리를 잡을 것 같다.


오늘은 레슨일지라기보단 지름일지..같은 느낌이지만, 무튼 오늘의 레슨도 잘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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