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륜 Feb 08. 2017

통영의 겨울

서울 촌년이 통영에 처음 갔다.

출발 전까지만 해도 큰 기대가 없던 여행이었다. 

동행자도 나도 둘다 너무 바빠서 버스도 이틀전인가 예매했고, 숙소도 그냥 아는분이 아는 곳(...)을 예약해두곤 그게 어디 있는 숙소인지도 가면서 알아봤고, 굴이 유명하다는 것 외엔 아무 정보 없이 도착한 곳, 통영.


1박 2일의 짧고 빡센 일정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정말 너어어무 좋았다. 그곳의 경치도, 공기도, 산도, 밥도!

아침 8시반에 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해 딱 네시간이 걸렸다. 엄청 멀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자면서 오니까 그냥 적당한 시간이었다. 너무 졸려서 중간에 휴게소도 안내리고 아무것도 안먹고 그냥 마냥 자다가, 

도착하고 나서야 그날의 첫 식사를 했다. 

그냥 대충 찾은 곳에 들어가서 먹은 정식 2인분이었는데, 회도 나오고 된장찌개에 생선이 아주 실한 매운탕까지 준다. 사실 여기서 준 회는 내스타일이 아니었는데 의외로 매운탕이 엄청 맛있었다. 매운탕을 별로 안좋아하는 나를 딱 저격. 생선살이 한 입 가득 물어도 좋을만큼 통통하고 담백했다. 

밥을먹고, 숙소에 짐을 놓자마자 통영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정확한 명칭은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 왕복 만원이었는데, 엄청 길고 가파른 케이블카라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꿀잼.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오면서 보니 루지 탈수있는 곳도 바로 붙어있더라. 아직 정식개장은 안했는데 시범운영중인건지 타는사람들이 좀 보였다. 


케이블카를 내려서 산을 좀 오르면(계단으로 잘 정비돼있음) 전망대가 있다. 미륵산 꼭대기라고 비석도 있는데,  그거 좀 올랐다고 금방 지쳤지만 위에서 보는 경치가 너무 예뻤다. 예전에 중국 유학할 때, 천도호라고 해서 섬이 1천개 있다는 곳에 간 적이 있는데 딱 그 느낌이었다. 그것보다는 좀 더 아기자기했지만.


비가 올듯말듯한 날씨라 저 멀리 구름이 끼어있는게 더 예뻤다. 

후딱 케이블카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서, 게스트하우스에서 진행하는 일몰투어에 참여했다. 

우리 포함해서 5명의 손님이 있었는데, 한 차에 태우고 통영 곳곳을 가주셨다. 그냥 뚜벅이로 왔으면 잘 가지 못했을 곳들이라 더 좋았고, 여기 올릴 수는 없지만 사진도 엄청 많이 찍어주셨다. 


산에서 땀을 빼고 온 직후라 인간의 몰골이 아닌 상태로 참여했던게 너무 아쉬웠다...예쁜사진 많이 남길 수 있었는데. 

편백나무가 가득한 숲도 갔고, ES리조트? 인것같은데, 겨울은 여기가 일몰 스팟이라고 데려가주셨다. 진짜 예쁘게 잘해놨는데, 날이 흐려서 일몰은 못봤다. 해저터널은 별로 볼게없었는데, 그래도 가이드 해주신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설명을 잘 해주셔서 나름 의미가 있었다. 따로 찾아가기엔 좀 아쉬울것같고, 투어로 가면 딱 좋은듯!

통영대교 야경도 보고 서피랑에 올라가는걸로 투어는 끝났다. 투어 덕분에 알찬 첫날이었다. 우리가 직접 하나하나 찾아가기엔 좀 번거로운 곳들을 쏙쏙 잘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거!!!!!!!!!!!!!!!!!!!!!!! 성게비빔밥!!!!!!!!!!!  숙소에서 걸어서 갈수있는 곳이라 투어다녀와서 좀 늦은 저녁을 먹으러갔는데, 진짜 이거 짱맛있다. 하나도 비리지않고 눅진하고 부드러운게 이거 먹으러 통영 또 가고싶다. 성게비빔밥 시키면 졸복 두세마리가 들어간 복국도 같이 주는데, 저 성게비빔밥에 밥넣고 간장살짝넣고 슥슥 비벼서 비빔밥 한입 복국 한입 먹으면 정말 너무너무 좋았다. 

다음날은 소매물도를 들어가는 조금 (더) 빡센 일정이었다. 아침 7시 배를 타고 소매물도에 들어가서 세네시간정도 구경을 하고 12시반 배를 타고 나온다...는 것만 알고 따라갔는데, 배도 한시간 이십분을 타고 들어가야한단다. 멀미를 한번 하면 심하게 하는지라 좀 걱정이 됐는데, 다행히 배는 다 드러누울수있게 되어있어서 사람들이 정말 싹 다 ㅋㅋㅋ 드러누웠다. 선장 아저씨가 오죽하면 출발하시기 전에 다 둘러보시고는 "나는 뱃손님들을 받았지 하숙을 친 적이 없는데 여기는 죄다 하숙생들이네" 하고 가셨다. 특히 우리칸이 좀 심하게 드러누운듯. 바닥도 따끈따끈해서 덕분에 완전 꿀잠자며 올수있었다. 멀미는 개나줬다. 

배에 오르기 전에 충무김밥을 2인분 포장해왔는데, 도착해서 아침으로 먹으니 딱이었다. 근데 별로 통영 충무김밥 맛있는지 모르겠어... 그냥 서울에서 먹어도 충분한것같다. 아침은 우찌했든 먹어야했으니 그냥저냥 머.. 오징어무침은 맛있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조금 올라오면 보이는 정자근처에서 먹고, 그 바로앞에 있는 가게에서 커피를 한잔 사 마셨는데, 아저씨가 완전 커피장인이었다. 핸드드립으로 내려주신 커피가 진짜 꿀맛이었다.

근데 이 소매물도가 진짜 너무너무 힘들다...... 좀 찾아보고 알고 왔으면 좀 더 등산에 맞는 옷을 입고왔을텐데, 그냥 면티에 털후드에 파카 걸치고 갔더니 땀범벅이 될 정도로 힘든 코스였다. 가파른 소매물도섬을 완전 정통으로 가로질러 내려가면 하루에 두 번 열리는 돌길이 나오는데, 이 길이 열려야만 등대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등대섬이 쿠크다스 광고를 찍고나서 유명해졌다는데, 사람이 별로 없어서 너무 좋고 (근데 그만큼 힘들다. 정보 없이 그냥 단화구두같은거 신고 온 여자애들은 여기까지 못오고 소매물도 중간에서 포기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길도 잘 닦아놓은데다 경치가 예뻤다. 약간 제주도의 오름과 올레길을 섞어놓은 듯한 느낌도 들었다. 


배시간까지 꽤 여유가 있는데다 여기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어서 등대에서 온갖 점프사진 설정사진 다 찍고 한~참을 놀다가 다시 소매물도항구로 돌아왔다. 근데 역시나 돌아오는 길도 바위 타고 산을 넘어와야했기에 힘들었다..........돌아가는 배 안에서 완전 꿀잠.

통영항으로 다시 돌아와서는 좀 늦은 점심을 먹었는데, 사실 우리가 먹으려던 통영비빔밥(톳이 들어간 담백한 비빔밥)집이 문을 닫아서, 다른 식당에서 멍게비빔밥과 도다리쑥국, 회를 먹었다. 이 식당이 블루리본에 몇년 연속 실린 식당이라는데, 음식도 깔끔하고 좋았다. 멍게를 별로 좋아하지않아서 멍게비빔밥은 한숟갈만 먹었지만, 짝꿍은 맛있다고 잘 먹었다. 나는 도다리쑥국을 먹었는데, 이게 통영사람들에게는 '봄이 오는 소리'같은 음식이라고 한다. 쑥이 아직 향이 약했지만 담백하고 도다리도 맛있었다.  회는 저게 8천원밖에 안해! 통영 완전 혜자임.


남해는 2012년쯤 여수엑스포 할 때 엑스포 보러 가서 간장게장 먹고 온 이후에 처음이었다. 통영은 더더욱 처음이었는데 음식도 맛있고 도시도 아기자기하니 예쁘고, 경치가 너무 좋은데다 '섬'을 맛볼 수 있다니 적당한 도전의식도 샘솟게 한다. 올해 첫 국내여행으로 정말 완벽한 여행이었다. 나중에 다시 가게되면 거제도투어를 신청하고 루지를 타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천의 여름을 수놓은 음악과 영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