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디스 마이 도털”
“응? 뭐라고?”
“디스. 마이. 도털!”
매일 퇴근길에 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오늘은 대뜸 전화를 받자마자 디스 마이 도터라길래 뭔가 했다.
“디스 마이 도털! 내 딸입니다. 아니야?”
“아~~~~ 디스 이즈 마이 도러? 맞아.”
“도우러?”
“아, 아니야. 엄마 도터라고 해도 돼 도러나 도터나 똑같아.”
“디스 마이 선! 내 아들입니다. ”
“ㅋㅋㅋㅋㅋ어 맞아 맞아! 근데 엄마 디스 이즈! 마이 선”
“이즈? 아 아이 에스 이게 이즈야? 티 에이치 아이 에스. 그럼 다시 다시.”
“디스 마이 도터!”
끝내 이즈는 어디 가도 없었지만 엄마는 마침 영어공부를 하고 있었다며 오늘 배운 내용에 대해 이야기했다. 방금 공부하고 뒤돌아서면 자꾸 까먹는다는 한탄과 함께.
올해가 시작하던 즈음, 엄마가 내게 비밀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너 또 어디 가서 얘기하지는 말고, 혹시나 니 도움이 필요할까 봐 너한테만 얘기한다.”
나는 또 무슨 큰 일이라도 난 줄 알았다.
“뭔데?”
“엄마 중학교 입학한다.”
“응?????? 오!!!! 축하해! 언제 어디?”
“저기 니 나온 고등학교에서 할머니들한테 중학교 수업을 해준다네? 한 번 해보려고.”
“좋은데! 좋은데? 근데 왜 비밀이야”
“뭐 좋은 거라고 말하고 다니노.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왜~~~~ 난 엄마가 너무 자랑스러운데? 뭐가 어때서”
“또 봐. 너는 니생각밖에 안 하지?
다른 사람들 다 보통으로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는데 엄마가 초등학교밖에 졸업 못해서
이 나이에 중학교 다시 들어간다고 뭐 하러 말해.
엄마가 또 집에 일 생기고 오빠 결혼해서 애 낳고 그럼 못 다닐 수도 있는데...”
왜인지 모르게 자신이 중학교에 들어간다는 것을 비밀로 해야만 하는 이유들을 말했다.
엄마와 전화를 끊고 나서 집으로 가는 길에 다시 되새겨본 엄마의 말들 속에서
어릴 땐 전혀 보이지 않던, 통화를 하면서도 보지 못했던 엄마의 욕구들이 보였다.
엄마도 나만큼이나 하고 싶은 게 많았던 여자사람이었다는 걸 나는 또 잊고 있었다.
그 생각이 들고 나니 엄마의 중학교 이야기가 다르게 다가왔다.
우리 엄마는 하고 싶은 게 참 많은 여자였다.
공부도 하고 싶었고, 새로운 걸 배우는 것도 좋아했지만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기운 집안에서 중학교를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나온 뒤로는 줄곧 옷가게에서 일했다고 했다. 옷 만들기를 좋아하던 엄마는 계속 옷 가게에서 일하며 옷 만드는 일을 배우다 자기 가게를 차리고 싶어 했지만
할머니는 ‘여자가..’라는 말로 엄마의 결혼을 서둘렀다.
오빠를 낳고, 나를 낳고서도 매번 배움을 향한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동네에 있는 작은 서당에 나가 붓글씨를 배워보려 했고, 좋아하던 탁구도 다시 쳐보겠다며 체육관을 알아보곤 했다.
그러나 지금과는 다르게 육아의 책임이 온전히 여성에게만 지어지던 그때에
엄마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위한 시간을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셔야 했던 날부터 엄마는 조금씩 자신을 지워갔다.
‘엄마’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래서일까 엄마는 항상 내가 뭐라도 배우고 싶다 하면 망설임이 없으셨다.
내가 하고 싶다 하는 것은 무엇이든 지원해 주셨다. 직장을 가지게 되었을 때도 처음 한 말이
일터에 나갈 때 꼭 깔끔하게 입고 나가라.
철마다 정갈한 옷을 챙겨 입어라.
너의 직장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 해라.
입이 닳도록 말하셨다.
그게 젊은 시절 해주지 못했던 당신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는 걸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다음날 공부하는 엄마에게 응원이 될까 싶어 "good morning"이라고 카톡을 보냈다.
돌아온 엄마의 답장이 내 마음을 울렸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엄마가 느끼는 배움의 기쁨이 여지없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우릴 위해 묻어두어야 했던 엄마의 지나간 시간들이 미안해 눈물이 났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해 준 엄마의 용기에 감사해서 또 눈물이 났다.
그날 이후 며칠간을 통화할 때마다 학교 이야기, 공부 이야기를 했다.
엄마의 학창 시절 이야기, 할머니들 사이에서 엄마가 제일 잘한다는 이야기를 한창 하다가도
틈틈이 이거 뭐 다 늙어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오빠 결혼하고 애 낳고 그럼 엄마가 봐주러 가야지,
이제는 머리가 안 돌아가서 외워지질 않네, 돌아서면 까먹는다 아주.라는 말로
괜한 민망함을 감춰가며..
하루는 엄마가 아빠와 나눈 이야기를 해줬다.
아빠가 뭐 하냐고 묻길래 공부한 다했더니
아빠가 “애들 다 키우고 이제 와서 뭐 하려고 공부한다고 애를 쓰노. 머리가 돌아가나..” 라며
내겐 부러움 섞인 투정처럼 들리는 그 말에 내심 마음이 상한 엄마가
당신이 공부한 공책을 찍어 보냈는데 아빠가 아직 말이 없다며
나에게도 한 번 보라며 보내왔다.
엄마의 공책
여기엔 이즈가 있네!
한 자 한 자 눌러쓴 엄마의 글자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아니 아주 잘 썼는데?”
“엄마가 그래도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중학교 3학년 초까지는 다녔다아니가.
그래도 기본을 해본 적이 있으니 글자가 써지기는 하더라.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렇지”
“그래그래 엄마 그럼 더 열심히 해야지! 까먹으면 또 하고, 아침에 하고 저녁에 하고 자기 전에도 생각하고!”
“그럴 수 있겠나 엄마가 다 늙어가지고”
“아니 엄마 이제야 엄마가 원하던 한을 풀어내려는데 그만한 노력은 해봐야지!”
“그렇지. 그래도 엄마 오늘도 벌써 한 시간 넘게 앉아 읽고 쓰고 있다. 어제는 또....”
라며 다시 한참을 공부했던 이야기를 신이 나 털어놓으셨다.
참 감사한 일이다.
내겐 너무나도 당연했던, 그래서 오히려 내겐 되려 부담이기도 했던 그 공부가.
환갑을 한참이나 넘긴 엄마에게 일상의 가장 큰 설렘이 되었다니.
그런 엄마를 보니 나도 여기서 그저 ‘엄마’로만 살기엔
우리 엄마가 내게 준 것들이 넘치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멋진 엄마를 두었는데 내가 마냥 눌러앉을 수는 없지.
30년이란 긴 세월을 버티고 돌아 이제야 조심스레 꺼낸 엄마의 꿈.
그 꿈이 성대하고 화려하게 이뤄지길 바라지 않는다.
다만 그 꿈이 너무 빨리 바래지지 않게
마침내 해내고 있다는 그 설렘과 기대가 조금은 길게, 오래도록 엄마의 하루를 지탱해줬으면 한다.
졸업까지 3년이라던데, 3년을 잘 버텨내면 우리 같이 여행 가자고.
그곳에서 꼭 배운 영어를 써먹어보자고 했다.
외국에 가서 꼭 ‘디스 이즈 마이 도터’라고 날 소개해달라고 부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