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뭐 어때요? 하고 싶은 거 다 해봐요.
우연히 방송인 노홍철의 <청춘콘서트> 강연 영상을 봤다. 그의 답변 중에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학창 시절, 반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한 번은 노홍철에게 다가가 "나도 너처럼 활달하고 명랑한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단다. 그 말을 듣고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나랑 지금부터 친구 하자. 그런데 너 지금도 괜찮아."라고 위로했다. 1년 뒤 공부밖에 모르고 수줍었던 그 친구는 우리가 익히 아는 노홍철 특유의 명랑함을 똑 닮은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 태어나요.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닮아가는 능력입니다.
맞는 말이다. 우린 모두 같은 능력을 지녔다. 가까운 예시가 얼마나 많은가. 평생을 함께 살아온 노부부는 말투와 생김새, 분위기가 닮아 있다. 친구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면 닮게 된다. 아니, 닮은 삶이 된다. 그래서 주변을 잘 둘러봐야 된다. 지금 용기가 필요하다면, 자존감 넘치고 매사에 활달한 사람을 찾으면 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대학 시절, 방학 때 아르바이트로 에어컨 공장에서 일을 한 적 있다. 순차적인 공정 라인에 따라 내 곁으로 다가오는 에어컨을 긴 박스에 담아 포장하는 일이었다. 단순하고 반복되는 과정이었다. 몇 시간 집중해서 일했더니 허리도 아팠다. 무엇보다 지루했다. 주변을 둘러봤다. 다른 이들도 대부분 같은 표정으로 일했다. 무료해 보였다.
그때였다. 남들과는 다른 한분이 시선에 잡혔다.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더 잘 포장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분. 자기가 이렇게 저렇게 실험해보고, 방법을 터득하고 나면 신나서 다른 사람에게 알려줬다. 그런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었다. 진급도 마찬가지였다. 근데 그런 분이 있었다.
물론 반대인 사람도 있다. "고작 이런 일이나 하려고 살아온 게 아니다."라며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누군가가 있었다. 울분을 토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궁금했다. 그럼 어떤 일을 하려고 살아왔을까. 어떤 일을 해야 이 사람은 행복할까. 의심도 했다. 꿈꾸던 그 일을 했을 때, 과연 만족할 수 있을까? 이 사람은. 적지 않은 시간을 옆에서 지켜봐 온 나로서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살아가면서 운 좋게 나는 닮고 싶은 사람들을 종종 만났다. 텔레비전 속에서 '달인'이라는 이름으로도 마주했던, 자부심으로 빛나는 표정의 사람들. 남루한 일이라도 반짝반짝 윤기가 돌도록 만들어놓는, 누가 보기엔 정말 하찮은 일이라도 그 일에 영혼을 불어놓는 사람들. 내게 너무 먼 경지였다. 같은 상황에 놓였지만 마주하는 태도가 달랐다.
요즘은 다른 열망도 생겼다. 나도 누군가에게 닮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 살아왔던 삶이 때때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지점을 여러 경험을 통해 느꼈다. 글을 쓰는 것도 그런 이유다. 한 번의 대화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는 메시지가 있으니까. 좋았던 경험보다 아프고 고달팠던 순간들이 지금에 나를 만들었다. 계속 무언가를 쓸 수 있는 동력도 되었다.
지난 8월에 썼던 <꿈이 후회로 바뀔 때 사람은 늙는다>는 글을 가끔 본다. 내 글을 다시 읽고자 하는 생각보단, 소중하게 써주신 댓글을 다시 읽기 위함이다. 읽을 때마다 가슴이 저릿하다. 나도 이런 순간이 오는구나. 외롭고 고달팠던 숱한 시간들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최현숙 : 꿈이 후회로 바뀔 때 비로소 늙는다. 세 아이의 맘입니다. 아침 출근길 가슴이 먹먹해서 한참을 앉아있어요. 마음을 다 잡고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겠어요^^
jay kim : 왜 6번 낙방하셨을까요. 이렇게 글을 잘 쓰시는데. 울었습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엉엉 울었어요. 작가님의 꿈에, 그의 가장의 무게에, 좋은 글에 감사함에.
미암미암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지금 기로에 서 있어, 매일매일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주변 사람과 상황을 살피며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저에게 참 와 닿는 글이네요. 저도 조만간 누군가에게 저렇게 이야기해줄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으니 : 제 마음이 아픈 날이었는데... 춘프카님 글보고.. 눈물 한방울 흘리고.. 마음을 다 잡았네요. 응원합니다 ^___^!
사람처럼 꿈도 비슷한 성분인 것 같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앙드레 말로의 말이 딱 들어맞는다. 이곳 브런치에서 닮고 싶은 사람과 꿈을 숱하게 목격했다. 덕분에 글감과 용기를 얻는다. 계속 써야 되는 이유도 분명해졌다. 그 여운을 오래 남기고자 매일 무엇이라도 쓴다. 노력의 양과 질이 다른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우선 양으로 승부를 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