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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Nov 04. 2019

나는 어떤 사람일까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지난주였다.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기 전이었다. 이웃 작가님의 글을 읽었다. 곧 쓰고 싶어 졌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답하고 싶었다.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써본다.




1. 나는 반복되는 일을 좋아한다. 물론 업무는 빼고. 영화나 드라마 중에 가슴을 톡 하고 건드렸던 작품은 노트북에 저장해놓고 대사가 외워질 정도로 보고 또 본다. 해당 작품을 소개하면 내 개인적인 취향이 나타난다.


드라마는 <내 이름은 김삼순>, <연애시대>다. 촌스러운 이름과 뚱뚱한 외모라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만 언제나 당당한 김삼순이 좋았다. 대사 하나하나가 주옥같았다. 술에 취해 "내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아버지."라 말하는 삼순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눈물이 주룩주륵 흐르고 그날은 함께 취한다. 영화는 <노팅힐>, <냉정과 열정사이>, <어바웃 타임>, <일 포스티노>, <시네마 천국>이다. 드라마부터 영화까지 싹 오픈하고 나니까, 모든 것이 사랑이다. 나는 늘 사랑이 먼저였다. 멜로가 체질이다.


멜로와 함께 위 작품들 중에 내가 느꼈던 공통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어떤 일도 털어놓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같은 작품을 수차례 본 나는 때때로 주연보다 조연인 그들의 역할에 주목한다. 그렇다고 근사한 답변을 내놓아 말 한마디에 무언가를 변화시키진 않는다. 함께 울고 웃으며 그 과정을 함께 걷는다. 그들 덕분에 주인공은 산다.


2. 나는 친구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딱 3명 있다. 위 작품들의 영향이 미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이야기라도 말할 수 있는 친구는 딱 세명이다. 두 명은 창원, 한 명은 부산에 있다. 내가 전라도 광주로 오게 되면서 얼굴 보는 시간이 제법 줄어들었지만 자주 통화하고 가끔 만나도 어색하지 않다. 여운이 길다. 각자 사는 모습은 다르지만, 우리는 닮았다.

3. 나는 책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많이 읽지는 못한다. 1년에 50권 정도 읽는 듯하다. 내년부터는 목표를 좀 다르게 잡으려 한다. 한 권을 1년 내내 읽더라도 깊이 읽고 싶다.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카프카 님이 말한 대로.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_카프카


내가 읽는 책은 나의 도끼여야 한다. 내 얼어붙은 감성을 깨뜨리고 잠자던 세포를 깨우는 도끼. 그 여운을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 그래서 착실하게 그때의 감정을 기록하고 싶다.


4. 나는 낯선 경험을 즐긴다. 어떤 형태이든 좋다. 사람, 여행, 책을 통해서 대부분 느낀다. 정확하게 언제쯤 읽었던, 어떤 책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 내용의 일부를 빌리자면 나는 늘 여행자의 시선으로 생활한다(또는 그렇게 되길 원하는 것 같다).


5. 나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사람이다(라고 주변 지인들에게 자주 듣는다). 내 목소리와 말투, 평소의 유머 코드를 아는 지인이자 구독자는 킥킥 거리며 읽는다. "당신 목소리가 들린다."라는 말도 덧붙이며. 그래서 살짝 고민이다. 글로만 나를 접한 분들은 내가 좀 진지한 사람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게 무슨 고민이냐고 묻는다면, 의외로 나는 재미있는 사람이 되길 원하고 있을 수도 있다. 웃는 게 누구보다 어색한 나 자신이지만, 타인의 웃는 모습을 볼 때면 행복하다. 그 덕분에 개그 욕심이 많다.


6. 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모르겠다. 그 덕분에 글을 쓰는 것도 있다. 쓰다 보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나 자신을 마주하며 힌트를 얻는다. 이제 고작 삼십 대 초반에서 중반을 넘어서고 있으니까.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도 우습다.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또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도 답하고 싶다. 이것도 어려운 질문이다. 언제라도 얘기 나눌 수 있는, 대화하고 싶은 어른이 되고 싶다. 백발의 나이에도 청춘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어른. 또 좋은 글, 이왕이면 내 생각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실력으로 꾸준하게 책을 출간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삼순이 아빠처럼, 딸에게 소주 한잔 사줄 수 있는 친구 같은 아빠. 눈물이 흘러도 웃음 자국이 눈가에 남겨져 있는 그녀에게 착실한 사랑을 전하는 남자이고 싶다(요즘 은근히, 고백하는 날이 많구나. 매일 쓰다 보니, 솔직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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