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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Aug 20. 2020

세 줄 일기를 쓰는 그녀

밤 12시가 넘어 귀가하는 날이 잦다. 아이가 혹시라도 깰까 봐 조마조마하며 문을 열고 들어오면, 얼른 입던 옷을 벗어던진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마친 후, 곧장 소파로 향한다.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다 나도 모르게 잠들기 일쑤다. 요즘은 그런 날의 반복이다.


며칠 전이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소파에 누워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아내가 조용한 소리로 불렀다. 꼭 소개해주고 싶은 게 있다는 말과 함께. 힘겹게 고개를 들었더니 휴대폰을 내밀며 <세줄 일기>라는 글쓰기 어플이라며 매일 아이와의 일상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평범하지만 특별한 일상들이 모여 어느 정도 분량이 쌓이면 책으로도 출간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영혼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아이폰 메모장에 매일 끄적이고 있으니, 따로 어플을 다운로드하진 않았다. 문득 생각해보니, 한참 내가 글 쓰는데 빠져 있을 때 아내에게 "나보다 해외여행에, 유학 경험도 있고 쓸 게 차고 넘치는데 한번 써보는 게 어때?"라고 말하며 글쓰기를 독려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나는 쓰는 데 익숙하지 않아. 자기가 쓴 글 읽는 것만으로 충분히 좋아."라고 말했다.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다던 아내가 매일 일기를 쓴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웠다. 그리고 나에게도 분량이나 글의 농도 여부와 상관없이 매일 쓰는 글쓰기를 권하는 데 감사했다. 재촉하는 것 없이, 담담하고, 지혜롭게. 그 자극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이곳 브런치에서 짧은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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