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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Aug 17. 2021

무등산 그리고 백신 접종

지극히 개인적인 1.5일 일기 또는 기록

전라도 광주에서 생활한 지 6년째다. 


1.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낯선 이곳에서 새로운 이들을 만나고,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지독한 외로움에 집 앞 5.18 기념공원을 매일 산책하며 시를 읊던 때도 있었다. 고단했지만, 하나도 빠짐없이 내게 꼭 필요했던 기억이자 순간이다.


지난주 일요일. 마음을 나눈 지인들과 함께 무등산에 올랐다. 숱한 산을 오갔지만, 정작 광주에 살면서 무등산은 멀게만 느껴지곤 했다. '이번에야말로, 정상을 오르고야 말겠다.'라고 결심했다. 새벽 6시 30분 입구에서 집결하여 출발. 새벽 공기를 가르며 걷는 산길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코스는 증심사 입구에서부터 시작하여 중머리재, 장불재, 입석대, 서석대(정상) 코스였다. 하산하는 길에는 목교를 지나 중봉으로 내려갔는데 오를 때와는 또 다른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함께 걷던 네 명 모두 기진맥진하며 오르내렸지만, 하산 후 먹을 무등산 막걸리와 파전을 상상하며 걷고 또 걸었다. 


무사히 내려와 막걸리를 주고받았다. 알싸하고 시원했다. 이 맛에 등산하는구나, 혼자 중얼거렸다. 광주에서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늘 차량으로만 움직였으니까. 익숙했던 광주 곳곳이 색다르게 보였다. 바깥에는 타이밍도 묘하게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집으로 돌아와 양쪽 무릎에 파스를 발랐다. 


날씨도 적당했다. 정상에 다다르자 구름이 살짝 끼긴 했지만, 충분히 조망이 좋았다. / 정상 직전, 입석대에서 숨 고르는 중
무등산 막걸리, 파전, 그리고 묵사발까지.


2. 다음 날, 아내는 출근했고 나는 아들과 함께 온종일 있었다. 둘이서 산책도 다녀왔고, 밥도 해 먹었다. 낮잠 자는 아들을 빤히 지켜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읽다만 시집도 만지작 거리며 느긋하게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코로나 19 잔여 백신 알람이었다. 지난 7월 말부터 지금까지 잔여백신은 늘 떴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 없었기에 큰 믿음 없이 신청 예약을 눌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예약돼버린 것이다. 


막상 확정되고 나니, 살짝 두려웠다. 주사나 이후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었다. 그저, 그날 저녁 가족 모임에서 전어구이와 각종 회를 먹기로 했는데 그 좋은 안주를 마주하며 술을 먹을 수 없게 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어쨌든 접종을 치렀다. 따끔하다고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머리도 아프지 않았다. 타이레놀을 먹고 잘까, 고민하다가 말았다. 현재까지도 팔 저림 증상도 없이 멀쩡하다. 우선 내일까지 지켜봐야겠지만, 아직까진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다. 


되려, 등산 후 통증은 여전히 남아 있다. 

종아리와 허벅지 곳곳이 쑤신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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