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일상』1부 : 유일한 일상
첫 취재원을 기억한다. 76세 할머니였다. 경남 창원 상남동 빌딩가 중 하나가 그분의 일터였다. 매일 새벽 4시면 일어나 대충 끼니를 때웠다. 서둘러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와 그곳까지 걸어가면 50분 정도 소요됐다. 주 업무는 빌딩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8년간 같은 건물에서 이렇게 일을 하셨다고 했다.
나는 그 출근길을 일주일간 동행했다. 선배들은 굳이 새벽부터 나갈 필요 없다고, 하루만 따라다녀도 된다고 했지만, 고집을 부렸다. 그분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쓰지 못할 것 같다고 떼를 썼다.
취재 목적은 ‘노인 일자리의 실태’였다. 지극히 뻔하고, 좀처럼 해결하기 어려운 주제였다. 주변에서는 다른 것을 찾아보는 게 어떠냐고 조언했다. 더 분명하고 이슈가 될만한 것들을 발견해보라는 요지였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참 고집이 세구나. ‘뻔하지만, 뻔하지 않게 써 볼게요.’라고 말하며 취재를 시작했다.
당시 12월 초였다. 바람이 제법 찼다. 따뜻한 꿀물을 데워 할머니께 드렸더니, 방긋 웃었다. 아무래도 기자랍시고 찾아왔지만, 어려 보이고 초보인 게 팍팍 티가 났을 거다. 주머니 속에 챙겨둔 여러 질문들이 적힌 수첩을 만지작거렸다. ‘얼른 물어봐야 하는데.’ 초조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괜찮으니까, 다 물어보세요.”
여러 질문이 오갔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적어놓은 질문은 식상하고 딱딱하게 느껴졌다. 수첩을 도로 주머니에 넣고 말했다. “할머니, 편하게 일주일간 대화 나눠요.” 그렇게 한참 이야기에 빠졌다. 지극히 개인적인 그분의 삶을 들으며 울고, 웃었다. 모든 취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취재원을 떠올리며 한 문 장씩 쓰기 시작했다. 그토록 망설임 없이 써봤던 기억은 없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써 내려갔다.
최종적으로 확인받는 과정에서 “이렇게 쓸 거면, ‘인간극장’ 작가를 해.” 라며 질타받았다. 속으로 ‘그거, 꼭 나쁜 건 아닌 것 같은데’라고 잠깐 생각하다 말았다. 감정을 눌러 담아 쓴다고 썼는데, 여과 없이 드러났나 보다. 분 했지만, 인정했다.
결국 첫 취재는 기사화될 수 없었다. 아쉬웠다. 스스로 선택한 주제였고, 그 과정에서 배운 점이 더 많았으니까 참고 넘겼다. 다만, 죄송한 건 할머니였다. 사정을 설명드렸고, 고개를 숙였다. 할머니는 별다른 말씀 없이 괜찮다고 되려 나를 위로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마음을 정했던 것 같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떤 것에 흥미를 느끼고 집중하는지 더 명료해졌으니까.
소개 영상 https://youtu.be/ah1jXl4M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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