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소송>
<소송>은 <변신>의 작가로 잘 알려진 프란츠 카프카의 미완성 소설입니다. 20세기의 위대한 소설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카프카는 생전에 세 편의 장편소설을 썼는데, <실종자>와 <소송> 그리고 말년에 집필한 <성>입니다.
흔히 ‘고독의 3부작’이라고 불리는 이 작품들이 작가의 사후에 모두 출간되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은 자신의 모든 유고를 불태워달라는 친구의 부탁에 호응하지 않았던 막스 브로트 덕분입니다.
<소송>은 출간되자마자 독자와 비평가들을 사로잡으며 20세기에 나온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았습니다. 또한 작가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는 발판이 됩니다. 여기에는 이 작품이 다른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미완성이기는 하지만 보다 완결된 느낌을 준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이는 <소송>을 집필하면서 카프카가 ‘마지막 장’을 미리 써두었기 때문인데, 다시 말해 이 소설의 첫 부분과 끝 부분을 먼저 써놓고 중간 부분의 장들을 느슨한 연관 속에 비연속적으로 써나가는 집필 방식을 취했던 것입니다.
이 소설은 은행의 간부로 근무하는 주인공 요제프 K가 서른 살 생일에 갑자기 체포되어, 1년 동안 이상한 소송을 겪다가 결국 처형당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첫 장에서는 ‘체포’가, 마지막 장에서는 ‘종말’이 이야기되고, 중간 장들에서는 1년이라는 시간 틀 안에서 전개되는 사건들이 묘사되는데, ‘소송’을 당한 주인공이 종말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에 걸쳐 벌이는 절망적인 대결의 묘사가 주된 내용입니다. 그러나 독자는 소설을 읽는 중에, 또는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당혹감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이유는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도 여러 의문이 해소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요제프 K의 삶에 소송을 벌이면서 소설의 보이지 않는 중심축을 형성하는 ‘법원’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요제프K는 무엇 때문에 법원에게 쫓기고 결국 처형당하는 것일까? 이외에도 소설에는 하숙집에서의 심문, 가정집과 연결되어 있는 법정, 부패하고 음란한 법원 인물들, 은행 창고에서의 태형 장면, 의뢰인을 노예처럼 취급하는 변호사, 대성당의 신부, 채석장에서의 처형 장면 등 이성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장면이 많이 등장합니다.
덕분에 카프카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작가의 실존적인 상황의 서술, 광기의 전체주의로 흘러가는 현대 관료체제에 대한 예견, 인간 존재에 대한 은유 또는 종교적 비유담 등으로 읽히며 여러 해석을 낳습니다. 흔히 ‘카프카적’ 소설이란 표현을 쓰는데요. ‘몽환적이고 위협적인 분위기, 악몽과 부조리를 연상케 하는’ 흐름과 문체를 뜻합니다.
앞서 소개한 대로 이 소설은 결말이 주인공 요제프K의 처형으로 끝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초중반까지는 가벼운 마음으로 무언가 멍청해 보이는 주인공의 모습들을 따라가며 읽어갔습니다. 하지만 중후반이 넘어가면서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밀려왔습니다. 본인의 죄명도 모르고 정신없이 소송에 휘말리고 있는 주인공 요제프K의 모습이 또 다른 현대인의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입니다.
톱스타 연예인을 예로 들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인터넷 곳곳에 본인도 알 수 없는 루머가 섞인 뉴스가 보도되었다고 가정해 보면, 말 그대로 끔찍합니다. 그 사실이 진실이든 아니든, 이미 뉴스를 접하는 일반인은 해당사건의 주인공을 ‘범죄자’로 규정해 버립니다. 설사 당사자가 자신의 입장을 외쳐도 한번 공론화된 여론의 흐름은 쉽게 깰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서야 그 사실이 왜곡되었다는 것이 판정되는 현실 사회. 아침에 자고 일어나 한순간에 범인이 되어 소송에 말리는 요제프K와 흡사한 지금의 사회를 지켜보며 알 수 없는 서늘함을 느꼈습니다.
20세기에 이런 소설을 쓴 카프카는 과연 자신이 이렇게 대단한 소설을 집필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생전에 스스로 출판하지 않았겠죠.
다시 한 번 카프카의 <소송>을 읽어보려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진 않을까 하는 조그마한 기대를 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