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엄마 한 일주일 정도.. 포르투갈에 다녀와도 될까?"
"나는 엄마가 왜 가야 하는지 이해가 안 돼..."
말 끝에 묻은 울먹임,
등 돌려 베개에 얼굴을 묻는 아들을 보며 굳게 다짐한 마음은 금방 무너졌다.
5년간 모은 적금의 만기날. 이 돈이면 적어도 9개월 간 책방 월세 걱정은 하지 않을 수 있을 텐데. 열 수 없는 적금 통장에서 예금 통장으로 옮겨진 금액. 꺼내쓸 수 있으니 또 필요한 곳에 야금야금 써진다. 이러다 어디에 썼는지 흔적도 남지 않은 채 사라질 것만 같다.
'돈이 모이지 않는 살이 있어요.' 어디서 소개받고 갔던, 절인지 철학관인지 모를 곳에 스님인지 아닌지 모를 분이 한 말이었다. 부부가 둘 다 돈이 모이지 않는 살이 있지만, 궁합이 아주 잘 맞아서 잘 산다고. 처음엔 아주 용하시네, 하고 갈라선 이후 한번 더 갔는데 이후로는 갈 일이 없어졌다. 대체 왜 나한테만 자꾸 이러냐고 절규했던 스물 여덟.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며 다음 생엔 꼭 귀한 사람으로 태어날 거라고 했었지. 지금 당장 괴로운데 다음 생이 뭐가 중요해요. 운명이라는 말이 지독하게 느껴졌다. 짧은 명리학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맞든 안 맞든 누구에게 확신에 찬 말을 들으면 잔상이 오래 남는다. 불편한 말을 소화시키려면 생각을 여러 번 거쳐야 했다. 어차피 돈이 모이지 않는다면 많이 벌고 많이 나누면 되지. 모이지 않는단 거지 벌지 못한다는 건 아니잖아. 많이 나누고 많이 경험해야지. 다짐했다. 혹시 이번에도 살이 적용된다면, 어차피 쓰게 될 돈이라면. 스스로를 더욱 넓히는 일에 쓰고 싶었다.
"왜 하필 포르투갈이야?"
서른이 넘어서까지 가까운 일본 한 번 가보지 않았다. 언젠간 가겠지 막연히 꿈꾸며. 만약 해외여행을 간다면 어디로 갈 것인지 종종 고민하곤 했다. 그리하여 내린 결론은 포르투갈. 이유는 특별하지 않았다. 닮고 싶은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 같이 좋았다는 곳이었고,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는 서점의 이름이 리스본이라서.
GPT와 친해진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에게 '만약 내가 해외여행을 간다면 어느 나라를 추천하고 싶어?'라고 물었을 때 1위로 나온 나라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 GPT는 이어서 말했다.
"이번 여행은 혼자 가는 걸 추천해. 다녀오면 아이와 다시 가기 위한 동력이 될 테고.
창작자로서 사색과 글 쓰는 시간을 가지는 데에도 혼자가 유리해."
묻기 전부터 둘이 간다는 것은 비용적으로도, 걱정 때문에라도 생각할 수 없었다.
주민등록등본에 우리 둘 이름만 남은 것도 벌써 5년째. 일을 시작하고부터 한 쪽 빈자리는 우리 부모님과 동생이 함께 메꿔주고 있었다. 일찍 퇴근하지 못해도 꼭 둘이 함께 잠들기. 한번도 어긴 적 없는 무언의 약속. 이제 곧 초등학생이 되니까. 퇴직한 할아버지와 보낸 시간도 길어졌으니 이제 한 번쯤은 가능하지 않을까.
'이번엔 어쩔 수 없어. 진짜로.
이번에 혼자 다녀와서 다음에 꼭 같이 갈 기회를 만들어야지.' 아주 굳게 다짐했다.
늦은 밤, 작은 무드등을 하나 켜놓고 옆에 누운 녀석에게 슬쩍 물었다.
사실 그때까지도 진짜 떠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있잖아, 엄마 한 일주일 정도.. 포르투갈에 다녀와도 될까?"
울음을 참고 돌아누운 나의 사랑.
다짐한 마음이 무색하게 바로 무너졌다.
작은 등을 끌어안으며 물었다.
"그럼 우리 같이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