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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Sep 18. 2020

글쓰기의 고단한 즐거움.

자뻑. 그래, 난 자뻑이 너무 심해.

  

  매 꼭지마다, 그렇게 슬픈 내용도 아닌데 - 왜 이렇게 삼십 분에 한 번씩 울었나 모르겠다. 어떤 꼭지는 너무 오열해서 쓰다가 중단한 적도 있다. 쓰고 나서 매 꼭지마다 마무리 단계에는 매번 읽었다. 읽고 고치고, 읽고 고치고, 읽다가 정신이 자꾸만 다른 데로 날아갈 때면 서서 읽고 출력해서 아파트 한 바퀴 돌면서 읽고. 읽으니 좋았다. 대본 읽듯 막 연기하면서 읽으니, 그때 그 마음이 살아났다. 이 참에 연기자를 지원해볼까. 글이나 잘 쓰자.     

  어떤 꼭지는 그때 그 감정을 살리기 위해 초안은 등장인물을 실명으로 썼다. 그랬더니, 정말 너무 힘들었다. 그 사람이 내게 했던 그 말들이 고스란히 내 마음에 찍혀서 다시 한번 그 사람이 미워졌다. 그 상황을 쓰기 위해 머릿속에서 동영상 다시 보기를 30회 이상 해야 했다. 나는 혼자서 이미 지나간 사건과 이미 용서한 그 사람을 30번 이상이나 미워해야 했다. 중간에 너무 마음이 시달려서, 나를 이렇게까지 괴롭히는 것은 아닌 거 같아서 등장인물의 이름을 아예 다른 이름으로 바꾸었다. 그랬더니, 감정을 조금 누그러뜨리고 쓸 수 있었다. 감정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면 잘 써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내 글이지만, 다소 누그러뜨리고 객관적으로 쓰는 게 글 쓰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이 또한 상황에 따라 다를 테지만.     


  그때, 갑자기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떠올랐다. 작가 후기에 이 소설을 쓴 이후에 한강 작가 본인이 다시 태어났다고 말했다. 그 국가권력의 폭력을 온몸으로 견뎌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써 내려간 한강 작가가 너무 대견하고, 한 편으로 대한민국에 존재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내가, 내 이야기가 감히 그것에 비할 바냐. 일 개 개인의 소소한 감정을 내려 적는 작업임에도 이렇게 스스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눈물바람이 되고 마는데.     


  중간중간에 글쓰기에 집중하지 않으려 할 때마다, 다른 사건사고에 집중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럴 때마다, ‘쓰기 싫구나’ 생각했다. 코로나 핑계, 이사 핑계, 3년째 방치된 소파를 갑자기 고르기도 했고. 남동생 아파트 청약에 온갖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렇게 쓰고 있다. 마지막 4장이, 설계만 되어졌다. 그리고 한 꼭지 썼다.


  계속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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