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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arlet Feb 06. 2024

[일상 이야기] 부평초처럼 흔들리는 게 일상인가요

그렇지만, 바위도 깨뜨려 모래알이 되는 게 삶인걸요

나는 항상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 멋지게 살고 싶었고, 이런저런 것들을 다 잘 해내고 싶었다. 어느 날은 일본어를 잘 해서 애니를 자막 없이 보는 오타쿠가 되려고 했다. 꽤 열심히 공부했다. 일본어 책을 두 권 정도 뗐고, 일본어 학습 관련 오디오북도 열심히 들었다. 그렇다곤 해도 라가나와 가타가나를 다 외운 것 말고는 뭔가, 애매하게 기억이 난다. 아주 간단한 것, 그러니까... 저는 김치찌개를 좋아합니다. 이런 문장 말고는 말을 할 수도 없다. 배운 건 배운 건데, 써먹기가 참 애매할 만큼만 배운 셈이다.


어느 날은 내 최애를 아주 멋지게 그려내서, 1000RT를 달성하는 트위터리안이 되려고 했다. 처음엔 "기초 그림 공부" 책을 사서 동그라미와 네모로 사람 그리는 법을 배우며 공부를 했다. 그러다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를 따라 시키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뭔가 잘 모르겠어서, 결국 아나토미 책을 사서 책 떼기를 했다. 저 책을 산 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 한 권을 다 떼는 일은 없었다. 매일 한 쪽씩만 따라 그려도 되었을 텐데!!!!!


 하지만 그런 게 내 뜻대로 된다면 그게 인생이겠는가. 예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내 뜻대로 계획을 이뤄본 적이 없다. 새삼스럽지만, 그래. 나는 언제나 원대하게 계획을 짰고, 멋지게 시작했으며, 아무도 모르게 끝을 맺었다. 용두사미라는 말이 참 어울리는 계획성이다. 계획이 아까워서 아무것도 놓아두지 못한 흔적이 우리 집에는 가득했다. 일본어 공부 책, 중국어 공부 책, 그림 공부 책, 별별 잡다한 지식이 들어간 두꺼운 책들까지. 버리지 못한 이유는 이제껏 공부한 흔적이 아까워서이고, 버리고 싶은 이유는 볼 때마다 내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화가 나서 충동적으로 다 치워버리긴 했는데, 그래도 문득문득 아까운 생각이 드는 것은 용두의 시간에 들였던 나의 노력 때문이리라.


이제 스스로를 되돌아볼 시간이다. 왜 나는 계획을 지속하지 못하는 것일까? MBTI로 스스로를 분석해보자. 역시, 내가 P이기 때문일까? ENTP는 렇게까지 마음이 잘 흔들리는 걸까? 뭔가에 로망을 가지고 하고 싶지만, 상 한 두 달 정도 열정적으로 행동하다가 그만둬 버린다. 마음이 식어 버리는 것 같다. 나는 계속 사랑하고 싶은데, 왜 내 맘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거지.


물론 모든 사람이 자신의 계획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항상 멋지게 계획을 세우고, 초반에는 이상하리만큼의 열정으로 그 계획을 해치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열정이 바닥나는 순간 나는 그 부지런한 루틴도 전부 그만둬 버리고 게으름에 다시 빠져드는 것이다. 3주를 지속하면 계속된다거나, 6개월간 지속하면 몸에 밴다거나 하는 것은 남의 일일 뿐이다. 나는 그저 그 모든 것을 그만두고 드러눕는다.


이제껏 쌓아놓은 성이 모래성이었다는 사실을 느끼면 꽤 허무하다. 꾸준히 계속되었으니 그 힘으로 지속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산산히 무너진다. 단단한 루틴 만들기는 어렵고, 나는 언제나 내 욕망과 편안함 사이에서 부평초처럼 흔들린다. 언제쯤 나는 단단한 루틴을 가질 수 있을까? 변함없이 바위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바위는 모래가 될 것이고 나무는 자랄 것이며 산은 사계절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숲에 길이 생기거나 골짜기에 대피소가 들어오기도 한다. 아무튼 세상에 일관적인 건 정말이지 찾기 어렵다. 그러니 나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삶의 법칙인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은 열정적인 삶을 동경하지만 일상적인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이 나인 것을.


나 자신이 부끄럽고, 때로는 싫고, 때로는 너무 바꾸고 싶지만 바뀌지 않을 때가 많다. 나이가 들며 점점 그런 나 자신과 어느 정도 타협하게 된다. 나 자신을 지나치게 채찍질하지도, 미워하지도 말자. 다만 나 자신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때로는 당근으로 유혹하고 때로는 밀어붙이자. 그 균형을 맞추기 어렵다 하더라도, 그 시간들이 나를 더 나은 나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기에.


나 자신에게 억지로 일관성을 밀어붙일 필요는 없다. 변화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나는 내일의 나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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