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돈 관리 이야기 7 - 그리하여, 현재
소소하고 착실하게, 현재를 쌓는 과정
변화는 어찌 보면 느릿하게 다가온다. 매일매일은 길고 지루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차곡차곡 쌓여 있다. 내게는 가계부가 그랬다. 어느새, 나는 반 년 간의 가계부 쓰기를 끝내고, 반 년의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었다.
가계부를 쓰면서 알게 된 건 나의 현재였다. 모르려고 애썼던 것들이 가득 드러났다. 매달 쓰는 돈이 들쭉날쭉했는데, 이건 계획성 없는 나의 소비 탓이었다. 충동적으로 큰 돈을 결재하고, 그 다음 달에 무리해서 돈을 아끼려고 한 게 보였다. 무리해서 돈을 아낀 탓에 그 다음 달에는 미뤄둔 결재가 우르르 다가와, 또 다시 소비액이 늘어나곤 했다. 어느 달에는 돈이 모자라 엄마나 오빠에게서 빌린 적도 있었다. 제멋대로인 나 자신을 눈에 꼭꼭 담아 두었다. 나만 알고 있기에, 나만 잊어버리면 될 소비 습관이었다. 하지만 나는 바뀌기로 마음 먹었고, 바뀌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를 잘 알아야 했다.
여기서 재미난 일이 하나 생겼는데, 내가 쓰던 가계부가 절판되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가계부의 온갖 정보를 종합하여 업체에 연락을 해보았으나 이미 품절된 지 오래라는 답이 왔다. 그래서 나는 이 가계부의 프레임에 내가 안 쓰는 부분을 걷어내고 내 취향을 더해, 나만의 가계부를 제작했다. 저작권이 불안하여 어디에도 보여줄 수 없는, 정말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가계부였다. A5 사이즈는 근처 출력소가 받아주지 않아 인터넷으로 제작했다. 이쯤되면 내가 가계부를 쓰고 있는 것인지, 가계부가 나를 이용하는 것인지... 하지만 받아본 가계부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 생각도 쏙 들어갔다.
그리고 새 가계부를 쓰며, 나는 깨달았다. 6개월간 열심히 썼는데, 그 데이터가 고스란히 의미를 잃을 판이라는 것을. 종이 가계부는 데이터 관리가 정말 안 된다. 나는 이 때 네이버 가계부를 함께 쓰기로 마음먹었다. 6개월의 데이터는 주말 내내 정리하여 인터넷으로 들어갔다. 데이터를 일목요연하게 확인해 보고 싶을 때 네이버 앱으로 가계부를 켠다. 네이버 가계부는 사실 엄청 좋은 기능이 있다거나, 사용하기에 편하지는 않다. 내게 네이버 아이디가 있었고, 네이버가 운영하는 가계부가 있었던 것이 사용한 이유다. 더 좋은 웹 가계부가 있다면 추천을 받고 싶다. 좀 고생은 하겠지만....
덧붙여 나는 미니멀리즘을 동경하고 있었는데, 가계부를 쓰는 것이 내 물건을 정리하는 데도 영향을 주었다. 내가 샀던 쓰지 않는 물건들이 생각보다 내 눈에 거슬렸기에 당근마켓이나 중고나라 등으로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면서 가계부 쓰는 데 재미도 더 들었다. 어느 날은 이천 원, 어느 날은 삼천 원... 월급과 출장비 외의 가욋돈이 들어오는 건 생각보다 즐거웠다. 가계부에도 뿌듯하게 무엇을 판 돈인지 적어 두었다. 지금은 물건이 많이 줄어 할 수 없지만, 중고거래 초기에는 물량이 많아서인지 많이 팔려서, 생활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어 주었다.
가계부를 쓰고, 생활비를 아낀다는 것은 어찌 보면 좀 궁상맞아 보인다. 내 삶이 가끔은 처량해 보이고, 아끼는 것이 지겹기도 하다. 하지만 미니멀라이프라고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이 바뀐다. 나는 미니멀한 삶을 추구하고, 군더더기를 버리며, 아주 큰 목적을 위해 내 삶의 패턴을 단정하게 바꾸는 것이다. 가계부를 쓰며 생긴 현타는 미니멀리즘으로 예쁘게 바뀌어 내 삶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니까 나는, 내 삶을 심플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건 궁상맞거나 처량하지 않다. 운동이나 요리 같은 생활방식의 일환일 뿐이다.
이제 내가 꿈꾸는 것은 좀 더 큰 부분이다. 나는 지출 계획을 세워서, 계획성 있는 소비를 좀 더 생활화하려고 한다. 원래 가계부의 목표는 과거의 데이터를 토대로 미래의 예산 계획을 세워, 그 계획대로 자산을 운용하는 것이다. 나는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맞추어 돈을 쓰거나 예산을 관리해 보고 싶다. 물론 계획성 없는 내 성격상,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지금 목표로 하는 것은 보험을 공부하는 것이다. 보험의 특징, 내 보험이 커버하는 범위, 내가 어떤 보험을 들어야 하는지를 공부해보려고 한다. 물론 보험은 내 흥미 영역이 아니므로, 정말 이를 악물고 공부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사실 내 실생활에 가장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내가 제일 모르는 것 또한 보험이다. 보험을 공부하는 건 내 돈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내 돈을 관리한다는 것은, 아주 긴 시간의 인내와 공부를 필요로 한다. 나는 근 5년동안 꾸준히 내 삶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은 부분이 있고, 드라마틱하게 바뀐 부분이 있으며, 바뀌었는지 알쏭달쏭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고민하고 삽질했던 그 수많은 시간들이 아깝지는 않다. 나는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었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아서다. 우리는 많은 선택을 한다. 그리고 더 좋은 선택을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나를 모르는 채 하는 선택은 위험하다. 우리는 남에게 기대지 않고, 나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만이 나를 지켜줄 유일한 방법이니까.
돈 관리 또한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나를 위한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