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전 오늘만 살아요"
늦은 새벽까지 술 마신 후, 비틀대며 출근하는 직장동생이 말했다.
"내일 죽을 수도 있는 건데 왜 아둥바둥 살아요?"
그녀의 말에도 타당성은 있다.
한국인의 행복 지수는 118위.
오늘이 행복해야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거니까.
하지만
오늘만 산다는 말은 "잃을 게 없다"는 말과도 같다.
일제 강점기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항일무장단체)들은 '오늘만 산다' 는 주의로 살았다.
슈샤인보이가 되어 코오피를 마시고, 살롱파티를 즐기는 삶이 대부분이었다.
나라를 잃은 그들에겐 내일이 없었다.
대의(독립)위해 언제든 '내 몸 하나 불사를 수 있다'는 각오로 살았다.
그들에겐 오늘은 일생 보다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심정이 이해 안 가는 건 아니다.
이미 사다리는 걷어차였고,
개천에서 용나는 일은 전무하다.
그럼에도 기회는 있고,
그 기회는 입만 쩌억~ 벌리고 있다고 떨어지는 감이 아니다.
아니 입 벌리고 기다리고 싶은 의지도 없다는 게 문제.
운도 노력해야 떨어지는 것 아닌가.
노력하지도 않고, 뛰어들지도 않고
실패할 까봐 두려워서 애초에 시작하지 못하는 심정을
애써 포장하고 싶은건 아닐까.
그런말 하면 멋있을 거라고 착각하는건 아닐까?
나는 준비 안된 노후가 더 두렵다.
누군가는 폐지를 줍게 될 것이고
자식에게 가난을 되물림 시켰다는 죄책감에 편히 눈감지도 못할 현실을 맞을 게 분명 하니까.
'오늘만 산다'는 말은 멋있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무책임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