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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식수술로 컴플렉스 탈출

by 챈들러 May 13. 2022


다시 안과를 찾기까지 17년이 걸렸다.


참으로 쉽지않은 결정이었다.



나는 눈에 관한 컴플렉스를 갖고있다.


시력은 0.5지만 난시가 굉장히 심각했다.



고단했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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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눈앞으로 지나가는 버스 번호가 보이지 않아

놓치기 일쑤였고

5~6미터 전방에 누군가를 볼때 찡그리거나 째려봐야 해서

오해를 받은 적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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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초년 시절

내 앞으로 걸어오는 인물에게 인사를 하면

"누구...?"

잘못 알아보고 인사해서

면구했던 적이 참으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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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용기를 내지 않았던 건 아니다.

이십대 초반, 제법 규모있는 안과병원을 방문했었다.






머리가 희긋한 남성 의사였는데,

시력 검사 결과를 받아본 그의 반응을 잊을 수가 없다.

"이런 눈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어요?"

어쩌면 내 인생을 구원해 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가득했던 나는

그에게 뜻밖의 결론을 들었다.

"난시 상태가 심각해서 우리가 할수 있는 범위를 넘어요."

가뜩이나 자존감 낮은 아이에게 청천벽력같은 말이었다.

"동공을 받칠 수 있을 만큼 눈이 나와주지 못해서 렌즈착용도 어려워요.

현재로썬 안경도 없을 거예요."

"그럼 전 어떡해야 하나요?"


"지금처럼 사는 방법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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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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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용기를 냈다.

대한민국의 발전된 의술에 기대를 걸어보고 싶었다.

사실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어린시절 부터 약시로 태어나서 눈이 1.0이상 성장해야 하는데,

0.5밖에 성장하지 못하셨네요. 난시는 교정할 수 있지만,

0.5이상은 어려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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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비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난시교정이 가능하다는 말에

온몸 가득 기쁨이 번졌다.



그러나

마음 깊숙이 묻어두었던 유년의 상처가 다시금 소환되었다.

사진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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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 때 부터 눈이 성장하지 못해 0.5에 머물러 버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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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동안 온몸에 덕지덕지 붙은 컴플렉스를 떨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행복하기 위해

겨우겨우 자존감을 채워넣고 있던 과정에서

과거의 그림자에

마음이 동요되고 있었다.

엄만 늘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눈 찡그리지마! 에코(에꾸눈)처럼 왜그래!!"

"그러게 티비를 가까이 보지 말랬지?"


.

"그래...내 잘못이 아니구나!"

엄마의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늘 예민하고 감정이 요동쳐 감당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그래서 늘 눈치를 봐야했고,

이유도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내게 상기시킨 분이었다.

한편으론,

..

"엄마가 얼마나 잘 먹지 못했으면 영양이 태아에게 가지 못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

내가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감정

홀로 사남매를 책임지며 살기위해

엄만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러니

과오를 이해하자.


이틀 후,

어떤 이는 라식 수술 후 광명을 찾았다며

"왜 그동안 이렇게 밝은 세상을 보지 못했을까."

라는 말을 했다.

사실 그만큼의 감동은 아니지만 결과에 만족하고 있다.

먼저 사물이 흔들려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만족한다.

그동안 방바닥에 그리고 음식물에 머리카락이 떨어져도 발견하지 못했던 나다.

가끔은 텔레비전 화면 섬세한 디테일 까지 보인다.

라식수술은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 중 일부다.

앞으로도 여정은 많이 남아있고

그렇기에 내 인생은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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