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와이프 렌탈 서비스

4부 지하궁전

by 챈들러

*

밤을 이기려면 어둠과 친해야 한다.

나는 젊은 밤송이에게 바짝 다가섰다.

“20201201번인데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

밤송이가 차트를 넘기더니 플레이보이 잡지 넘기듯 나를 보고 빙긋 웃었다.

“글쎄요. 대표님이 누굴 먼저 부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대표님이 직접 고른다고요?”

실망과 기대가 교차했고 나는 망연히 주저 앉았다.

푸른 새벽이 다가왔다.

대기자들이 하나 둘 떠나고
나 역시 골목으로 접어들던 참이었다.

그때,
등 뒤에서 “철컹” 둔탁한 쇠소리가 들렸다.

그 다음은 누가 팔을 꼬집어 비튼 듯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노인이 깔렸다! 노인이 깔렸다!”

셔터가 노인의 허리를 관통하듯 짓누르고 있었다.

노인의 몸은 부르르 떨렸다.

그러나 누구도 다가가지 않았다.

노인이 지옥문의 참맛을 경험하는 동안 대기자들은 구경꾼으로 전락했다.

나는 셔터에 몸이 닿지 않도록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마침내 두 다리가 들어갔고
힘차게 노인의 두 팔을 끌어당겼다.

셔터는 5초간 멈춰 있었다.

그러자 대기자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달려들었다.

셔터 아래로 몸을 집어넣으려고 안달이다.

절규와 아우성이 혼재된 순간.

“거기 뭐야.”

고함소리가 들렸다.

나는 노인을 끌고 2층 층계참까지 올라와 상황을 살폈다.

지하 1층 계단에서 밤송이 두 개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 손엔 은색 파이프가 쥐어 있었다.

대기자들이 다시 건물 밖으로 빠져나간 순간,
쿵 소리와 함께 셔터가 완전히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밤송이들은 셔터 밖에서 덜덜 떠는 대기자들을 향해 오른손 검지를 아래로 내려보이며 비열하게 웃었다.

밤송이가 사라지고 고요함이 다시 찾아왔다.

지금의 감각은 오직
불판 위에 타는 고기 냄새 뿐.

노인의 몸은 비스킷처럼 바삭하고 뻣뻣했다.

특유의 비린내도 사라졌다.

노인은 짧은 호흡을 뱉어냈다.

“기다리면 될 것을 이런 무모한 짓을....”
“내겐 하루가 십 년이네. 혹여 우리 실이를 만나거든 내가 왔다고 전해주게. 잊지 않다고 말이야.”

노인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몸을 뒤척였지만 좌절하고 다시 누웠다.

“8번 문으로 들어가게. 이제 나를 두고 가 ”

노인은 가늘고 긴 눈을 닫았다.

“지난번 거 갚는 거예요. 그 이상 기대하지 마세요.”

나는 노인을 업었다.

노인은 터럭 같은 힘으로 내 어깨를 잡았다.

2층 복도엔 화물용 엘리베이터와 일반용 엘리베이터가 두 대가 있었다.

버튼을 두 개 모두 누르고 기다리고 있는데, 화물용 엘리베이터가 먼저 섰다.

나는 복도에 몸을 붙인 다음 숨을 참았다.

엘리베이터에서 한 남자 내리고
복도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절호의 기회.

엘리베이터 안엔 푸른색의 드럼통 크기의 쓰레기통 4개가 들어 있었다.

뚜껑 안에 옷들이 절반쯤 쌓여 있었는데,
나는 그것들을 세 번째 통에 밀어내고
노인과 함께 두 번째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남자가 다섯 번째 쓰레기통을 가져와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곤 B7을 눌렀다.

롯데월드 자이로드롭에 억지로 올라탄 듯
바닥으로 추락하는 기분.

어디까지 내려가는 걸까?

여기가 지구의 중간쯤일까.

영원히 지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긴장감이 스쳤다.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자 남자가 첫 번째 쓰레기통을 밖으로 밀어냈다.

그리곤 사라졌다.

암전 속에 [GATE 8]이 보인다.

그러자 등 뒤에 있던 노인은 무슨 기운이 솟았는지 뚜껑을 밀어내고
밖으로 몸을 던졌다.

[GATE 8] 철문이 열렸다.

철문이 열리자 쏟아드는 빛의 광휘로 나는
한동안 서 있었다.

**

그곳은 영화 세트장처럼 가상현실이 펼쳐졌다.

반듯이 포장된 도로 위를 서행하는 자동차.

파스텔 계열의 조립식 건물은 빨랫줄처럼 길게 늘어서 있다.

어림잡아 축구장 두 개를 합쳐놓은 것 같은 전체 크기.

높은 천장에선 LED 전구가 빈틈없이 박혀 있었다.

한낮처럼 눈부신 세상 안에 또 다른 지하세계가 있었다.

붉은 벽돌 건물은 지하세계로 통하는 문이었다.

껍데기 속 진짜가 숨겨져 있었다.

내가 당황하는 사이 노인은 사라지고 없었다.

다시 혼자다.

나는 8분 음표가 그려진 건물로 들어갔다.

입구 자동문이 열리자 익숙한 팝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는 복도 가장 안쪽 방,
한뼘 크기의 문 창으로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거울을 보고 춤을 추고 있었다.

앳돼 보이지만 또렷하고 야무진 이목구비의 아이였다.

아스라이 부서질 듯 마른 몸은 빠른 비트에 꺾고 돌리고 흔들었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억지웃음을 머금고서.

음악이 끝나자 아이는 휴대폰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그리곤 나를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왜 자꾸 쳐다보세요?”

하마터면 입에서 소리가 나올 뻔했다.

“거울로 다 봤어요."
“사람을 찾고 있어.”
“누구요?”
“넌 여기 왜 있는데?”
“제가 먼저 물었잖아요.”
“아내를 찾고 있어. 여긴 어디니?”
“연습실이죠. 전 내일 데뷔조 테스트를 앞두고 있고요. 근데 여기 계속 있다간 곤란한 일이 생길 거예요. CCTV가 수천대 거든요.”
“그래. 고맙다. 한 가지만 물어볼게. AS 받는곳은 어디니?”
“렌탈이요?”

아이는 왼손으로 턱을 돌렸다.

“왼쪽 끝 건물이요. AS는 대부분 거기서 해요.“”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짓눌렀다.

날씬한 몸에 짙은 화장을 한 여자.

“당신 출입증 내놔.”
“저한테 도시락을 갖다주려고 오신 분이에요.”

아이가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러자 여자의 눈이 뾰족하게 변했다.

“닥쳐. 쓰레기 감정에 휩쓸리다간 한류스타고 뭐고 없어.”
“AS 받으러 왔는데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당신 그대로 있어요. 사람이 올 거예요.”

여자가 내 왼팔을 강하게 붙들었다.

나는 오른팔로 여자의 팔목을 비틀었다.

그러자 짧은 신음을 뱉고 주저앉았다.

내가 문 밖으로 뛰어나가자 자동문이 열림과 동시에 검은 장막이 덮였다.

나는 끝없는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정신을 잃었다.

***

손으로 얼굴을 더듬으니 천이 덮여 있었다.

시감각이 멈추자 다른 감각들이 예민하고 또렷해졌다.

쾌적한 실내공기 속에 화이트 머스크 향이 풍겼다.

코끝이 찡긋거렸다.

정인인가?

하지만 아내가 뿜는 공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눈치체곤 절망했다.

“좋은 말로 하지 왜 이런 걸 씌운 겁니까?”
“흠... 정신 돌아와네.”

둥근 여자 음성.

“벗겨드려.”

검은 천이 벗겨지자 흐릿한 했던 시야가 점점 초점을 맞춰갔다.

넓은 사무실이다.

정면으로 ㄷ자 형태의 소파가 긴 테이블을 둘러싸고 있었다.

여자는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
앉아 있었다.

언뜻 삼십대로 보이는 주무르기 적당한 육덕짐을 가진
짙은 향수의 주인.

라운드 넥이 움푹 파인 블랙 원피스에
밤알 크기의 에메랄드 목걸이가 가슴 골 속에서 반짝였다.

독특한 것은 여자의 눈썹이었다.

처음엔 눈썹 끝에 종이가 붙었나 하고 봤는데,
공작새 깃털을 눈썹 끝에 붙인 것이었다.

그녀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푸른 나비가 날아들 듯 눈썹이 팔랑팔랑 거렸고,
가부키처럼 두터운 화장은 표정을 감추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덩치 둘이 뒤에 서 있다.

밤송이들이다.

내게 복면의 씌우고 끌고 온게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서 눈물이 핑 돌 만큼 반가운게 뭐람.

“여긴 어디죠?”
“정신이 드나 보죠? cctv를 보니 8번 게이트로 들어왔더군요.”
“보완이 허술했습니다.”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선생님께 기회를 드린 겁니다.”
“기회라뇨?”
“예상보다 오래 걸리셨더군요.”

그들은 CCTV로 나의 동선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럼 제 목적도 아시겠네요.”

여자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여기 있습니까?”

여자가 내가 누워있는 침대 끝으로 다가와 엉덩이를 붙였다.

그리곤 왼쪽 허벅지 위에 오른쪽 허벅지를 포갰다.

그러자 스커트 자락이 올라가면서 옆트임 밖으로 허연 허벅지가 드러났다.

내 시선은 여자의 허벅지를 타고 중심부를 향했다.

이 와중에 몸이나 탐하고...
한심한 새끼.

불쾌감이 솟구치자 여자는 빙그르르 웃었다.

“옷차림이 불편했다면 미안합니다. 자위 같은 거죠. 제 직업은 자기만족이 필요하거든요.”
“어디 있죠?”

여자는 도톰한 입술을 다물고는 허공을 바라봤다.

“그 아인 사흘 전에 떠났어요.”
“어딥니까?”
“흐음...”
“거기가 어디냐고요!!!”

나는 여자의 목을 쥐고 흔들었다.

정신 줄을 놓고 있었는지 밤송이들이 내 등뒤로 오는 것도 짐작하지 못했다.

다시 암전.

나는 어둠속에 다시금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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