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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arlett Jang Apr 07. 2022

맥도날드 알바 3년 하고 적성 발견?

서비스업이 잘 맞다고 착각하며 살았다.

 대학교 2학년 때 휴학을 하고 난생처음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한참을 알아보다가 집에서 버스로 20분 거리에 맥도날드 매장이 새로 생겨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하였고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였다.


 20여 년 전에는  아르바이트생이라도 모든 제품의 g 수, 소스의 oz 수를 모두 암기해야 했고 수시로 필기와 실기시험까지 쳤다.

(예를 들어 빅맥버거는 번(빵)을 몇 초간 익힌 후 양상추 몇 그램, 양파 몇 그램, 피클 몇 개, 소스 몇 oz 이런 식.)


그리고 매장이 신축되기 전까지 서면, 해운대  등 대형매장으로 가서 혹독한 교육과 실습을 하였다.

아르바이트생을 이토록 스파르타로 가르치나 싶을 정도로 매니저들은 매우 냉정하게 우리들을 혼내며 가르쳤고 실수를 할 때마다 서로 부둥켜안고 울기도 하였다.


당시 시급이 1,600원이었는데 지금 시점으로는 이해가 안 되겠지만 그때는 IMF 이후의 불황이 계속되었던 시기라 아르바이트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였기에 최저시급과 구박에도 참고 일해야민 했다.


교육 담당 매니저들은 우리에게 처음부터 FM대로 교육시키기 위해 혹시 햄버거를 만들다가 실수라도 하면 그 아까운 햄버거 한 세트(12개)를 눈앞에서 쓰레기통에 내던졌다.


그렇게 잘(?) 배운 덕분에 우리들은 신규 매장으로 발령 나서 신입치고는 일을 꽤 잘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해를 거듭하면서 경력이 쌓일수록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을 교육시키기도 하고, 베테랑처럼 일하는 실세(?)가 되었다.


 원래도 햄버거를 좋아하는데 늘 햄버거를 먹고도 매번 맛있어서 근무가 없는 날에는 일부러 매장에 들러 사 먹고 가기도 하였다.

(차후의 일이지만 그래서 몇 년간 거의 매일 먹은 패스트푸드가 체내에 쌓여선지 30대 이후에 계속 아팠다.)


비록 그때나 지금이나 살갑지도 않고 빈말 같은 아부도 못하는 성격인데다 그 당시 나는 의상전공을 살려 취업을 할 생각이었기에 그곳에서 매니저로 진급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부산 맥도날드 전 지점이 맥킴 회사 소속이었기에 본사에서 개최하는 최고 우수사원, 서비스사원 선발대회가 개최할 때면 지점에서 나를 추천해서 대회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긴 아르바이트 생활 동안 동료들과 함께 일했던 기억들이 너무 재미있었기에 졸업 후 내가 디자인 분야를 접고 결국 다른 일을 찾을 때 가장 먼저 고려했던 직업도 서비스업이었다.


 막상 프랜차이즈 식품 관련 서비스업에 취업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긴 아르바이트 기간동안 맥도날드에서 매니저로서 승진한 경력이 없어서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취업관문이 바늘구멍처럼 좁아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 적성에 맞는 일을 찾고 싶었다. 결국 서비스업에는 취업하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하게 되었지만 내심 나는 서비스업이 나와 참 잘 맞는데 아쉽다는 생각을 했었다.





 몇 년 후 직장을 관두고 30살의 나이로 호주에 워킹 홀리데이를 갔을 때 시드니의 맨리 비치 앞 대형 마트 내의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그곳은 커피와 머핀을 파는 디저트 카페였는데 새벽시간에 배정되어 혼자 오픈 준비를 할 때면 20대 초반에 일할 때와 달리 너무너무 힘들었다.


외국어를 배우러 호주에 온 것이기에 외국인에게 주문을 받고 대화를 잠시나마 하는 것은 정말 즐거웠다.


그러나 새벽 5시, 아침도 굶고 꾸벅꾸벅 한 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매장에 도착한 후 혼자 바닥청소를 하고 머핀과 커피 세팅을 하고 나면 일찍부터 손님들이 몰려왔었다.

바쁠 때면 교대 아르바이트가 올 때까지 10시간 동안 점심은커녕 물 한 모금만 겨우 먹고 일해야 했고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그때의 경험이후 나는 결국 깨달았다.

나에게 육체적인 노동이 필수적인 서비스업은 너무 안 맞다는 것을.


내가 좋아했던 건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는 서비스업이 아니라 20대에 많은 또래 친구들을 만나서 함께 어울리고 협동하며 일했던 그 상황이 즐거웠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마음이 맞는다는건 정말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직장을 다니다 보니 일보다 더 힘든 게 사람과의 관계였다.


 어릴 때는 편견 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누구를 만나든 함께 즐거워했는데 요즘은 그냥 나와 결이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마음이 편하다.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을 만나면 불편하고 에너지소모가 너무 많이 된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너무 좋아했던,

사람들에게 웃으며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 너무 즐거워했던,

사람에게 당하지 않아서 순수하게 모두를 바라볼 수 있었던 그 시절.


아마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이제 마흔이 넘고 나니 사람을 보는 눈까지 생긴 것 같아서 첫만남에 느껴지는 직감이 편견이 아니라 사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확실한 건,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사람들을 더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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