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라(님랏 카우르)는 인도 뭄바이 교외 어느 아파트에 사는 가정주부다. 그는 딸에게 학교 갈 채비를 시키면서 혹여나 집 밖에서 사고라도 당할까 봐 조심할 것들을 신신당부한다. 집을 나선 딸이 좁은 비포장도로를 가로질러 스쿨버스임 직한 오토릭샤에 다다른 것을 보고서야 주방으로 돌아온다. 일라는 맛에 신경을 쓰며 부산스럽게 요리를 하는데 그 음식을 먹을 사람은 마땅히 남편이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오늘 혹은 최근 어떤 일로 사이가 냉랭해지거나 틀어진 듯하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남편의 마음을 풀거나 열어보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일라는 카레와 난을 만들어 기다란 원통 모양의 철제 도시락통에 차곡차곡 담고, 그 통을 다시 정성스럽게 녹색 가방에 담아 때를 맞춰 찾아온 노령의 배달원에게 건넨다.
녹색 도시락 가방은 다른 도시락 가방들과 자전거에 매달려 폭우가 쏟아지는 도로를 달린다. 한참을 갔다 싶은데 여정은 이제 시작이었다. 가방은 기차를 두 번 갈아타고, 다시 수레에 실려 옮겨진다. 배달원들은 말없이 도시락 가방을 옮기고, 한데 내려진 가방들을 또 다른 배달원이 들고 이동한다. 이 도시 사람들은 각자 음식을 만들어 무작위로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도시락 품앗이’라도 하는 것일까.
착오가 빚은 착각
일라의 도시락은 사잔(이르판 칸)의 책상에 놓인다. 서로 잡담을 나누기도 하는 다른 직원들과 달리 사잔은 업무 외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무뚝뚝한 표정의 그는 점심시간이 되자 사내 카페테리아로 가서 도시락 가방을 연다. 도시락통을 하나씩 열어 음식을 들여다보는 그는 어딘지 평소와 다르다는 표정이다. 도시락통은 그날 오후 무사히 일라에게 돌아온다. 식사시간이 끝나면 배달원들은 도시락 가방을 수거해 오전에 왔던 길로 돌려보낸다.
일라는 배달원이 도시락 가방을 현관문 앞에 놓고 가는 소리가 들리자 기다렸다는 듯 밖으로 나간다. 가방을 위아래로 들어보며 무게를 확인한다. 남편이 음식을 다 먹었을까, 아니면 남겼을까, 혹은 손도 대지 않았을까. 돌아온 가방의 무게가 가벼울수록 일라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도시락통은 텅 비어 있었다. 일라는 음식이 하나도 남지 않은 도시락통을 이게 웬일이냐는 표정으로 기뻐한다. 남편이 자신의 음식을 깨끗이 먹어치웠다는 건 부부관계 호전의 청신호였다.
정성껏 만든 음식을 도시락통에 넣는 일라. 영화 <런치박스> 스틸컷
일라는 장신구와 예쁜 옷으로 치장하고 남편을 맞는다. 그러나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는 남자는 사잔이 아니다. 일라의 도시락은 엉뚱한 사람에게 배달된 것이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일라는 아직 모른다. 귀가한 남편은 새로운 구석 하나 없이 냉랭하다. 길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비켜 지나가듯 아내를 지나쳐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모처럼 곱게 차려입은 아내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음식이 어땠느냐고 묻는 일라에게 남편은 “좋았다”고 말할 뿐이다. 그런데 그가 먹었다는 음식은 일라가 만들어 보낸 음식이 아니었다. 이제 일라는 도시락이 잘못 배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라의 도시락을 먹은 사잔은 인근 도시락 가게에서 점심 도시락 배달 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그 가게 도시락 가방이 일라의 도시락과 똑같이 생겼다. 원통형에 녹색. 배달원의 착오로 일라의 도시락이 사잔에게 갔을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잔은 퇴근길 도시락 가게에 들러 음식이 아주 좋았다고 칭찬한다.
모두가 외로운 사람들
사잔은 무뚝뚝한 사람이다. 타인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 신입직원에게 일을 가르쳐주라는 지시를 받고도 먼저 퇴근해버리고, 자기 집에 들어간 공을 주워달라는 아이들에게 “내가 너희 하인으로 보이느냐”며 요청을 무시한다. 그를 둘러싸고는 “고양이를 걷어차서 차에 치이게 했다”는 소문이 돈다. 사잔은 “사실이냐”고 묻는 신입직원에게 오히려 “고양이가 아니라 장님을 밀쳤다”고 말한다. 일라가 남편을 위해 정성 들여 만든 도시락은 하필 이런 사람에게 배달됐다.
일라는 다음날 다시 도시락을 보내면서 편지를 써넣는다. 남편을 위해 만든 음식이 잘못 배달됐다, 남편이 다 먹은 줄 알고 몇 시간 동안 행복했다, 감사의 뜻으로 도시락을 보낸다, 라는 내용으로. 보통의 사람이라면 짧게나마 답장을 할 것이다. 차가운 사잔이지만 답장을 써 보낸다. 도시락통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깨끗이 비워진 채 일라에게 돌아온다. 거기에 든 편지에는 “오늘은 음식이 너무 짰다”고 적혀 있다. 보내준 음식은 먹겠지만 이야기를 나눌 생각은 없다는 태도쯤 될까. 도시락을 매개로 한 두 사람의 편지 교환은 이렇게 시작된다.
서로가 도시락통에 넣어 보낸 편지를 읽는 일라(왼쪽)와 사잔. 영화 <런치박스> 스틸컷
이 영화 <런치박스(The Lunchbox)>(2013)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외롭게 그려진다. 삶은 누구나 외로운 것이다, 라고 말하듯이. 아내와 사별한 사잔은 이웃이나 회사 동료와의 교류마저 차단한 채 독신으로 살고 있다. 그는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울 때마다 건너편 건물 창문으로 이웃의 저녁식사를 들여다보며 자신의 고독한 현실을 재확인한다. 온 가족이 둘러앉은 식탁엔 온기와 웃음이 있다. 사잔은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혼자 밥을 먹는다. 집에서는 거실 협탁 앞에 앉아 딱 한 사람이 먹을 양의 음식을 비닐봉지에서 덜어낸다. 다른 의자들은 비어 있다.
일라는 어떤가. 그는 남편의 무관심으로 외딴섬에 갇힌 듯이 살고 있다. 가족은 저녁식사 자리에 둘러앉아서도 말이 없다. 남편은 음식을 입에 넣으며 TV만 볼 뿐이다. 일라가 ‘이모’라고 부르는 윗집 이웃 여성은 혼수상태에 빠진 남편을 15년째 돌보고 있고, 일라의 어머니는 병든 남편을 홀로 돌보면서도 딸에게 손을 벌리지 않으려고 애쓴다. 은퇴를 앞둔 사잔의 후임으로 고용된 신입직원 셰이크는 고아였다. 부모가 없는 그는 이름을 스스로 지었고, 밥벌이에 필요한 지식은 혼자 익히며 살아야 했다.
고독이라는 공통분모
고독이 마음의 허기라면 서로 마음을 나누는 교제는 밥을 먹는 것처럼 텅 빈 마음을 채우는 일일 것이다. 일라의 어머니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날 “돌보는 게 너무 힘들어서 네 아빠가 죽으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막상 죽으니까 그냥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사잔이나 일라나 셰이크나 제각각 외로운 사람이지만 그 외로움을 공통분모로 가까워진다. 삶이 충만하기만 한 이들은 고독한 이들과 제대로 교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고독은 타인의 고독을 이해하는 단서가 되고, 타인의 그 텅 빈 마음은 자신의 외로움을 털어놓을 공간이 된다.
일라와 사잔은 고독을 공유하며 조금씩 고독으로부터 멀어진다. 영화 속 그 누군가의 말처럼 가끔은 잘못 탄 기차가 우리를 목적지로 인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일행을 만났다면 목적지에 다다르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일라와 사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