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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걷는 최선화 Feb 18. 2023

초록이 고픈 날 유리온실에서 허기를 달래다

식물의 재발견 ㅡ 식물일기 23. 2. 1 (금)

날씨 : 유리 온실 안은 23도, 바깥은 2도.. 그래도 햇살은 공평하게 비친다.


초록이 고픈 날이 있다. 베란다의 반려식물이나 꽃집의 초록으로 허기를 채울 수 없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초록을 찾으러 나서야 한다. 어디를 가야 이 허기를 채울 수 있을까 침대에 누워서 머리를 굴렀다. 그때 작년에 깄던 오산물향기수목원이 생각났다. 거기 유리온실에서 보았던 몬스테라꽃이 떠올랐다. 차 한 잔을 텀블러에 담아서 수목원으로 출발!


10시에 도착한 수목원은 조용하다. 나처럼 아무것도 없는 듯 보이나 많은 것이 숨 쉬는 2월의 수목원이 궁금한 사람들이 간간이 보인다. 2009년 만들어졌다는 물방울온실은 메타세콰이아길 옆에 위치하고 있다. 작고 아담한 온실에 초록이 가득하다. 벌써 배가 부르다.


온실 속 식물들은 크다.

물방울 온실에서 가장 큰 나무들은 야자종류이다. 천장을 뚫고 나갈 것 같다고 생각하며 올려다보니 윗부분이 잘려나가 있다. 대략 10m 정도 되는 온실에 8m가량 되는 야자나무는 이렇게 계속 잘려가면서 옆으로만 잎을 넓혀야 하나보다 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무겁다.


야자들만큼 키가 큰 식물은 극락조이다. 우리 집 반려식물도 조건만 받으면 우리 집 천장을 뚫고 위층까지 자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천장이 아주 높은 유리 온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 보았다.


온실 속 식물들은 꽃이 핀다.

대부분의 식물들이 크게 작게 꽃을 피우지만 흑백의 바깥 풍경과 대조되는 초록들 사이에서 보이는 꽃들은 귀해서 더 아름답다. 극락조꽃, 부겐베리아, 홍화야래향 같은 나무에서부터 제라늄, 사랑초 같은 초본식물까지 꽃을 피우고 있다. 하와이 무궁화처럼 생긴 꽃이 있어서 이름표를 확인하니 이름도 생소한 클레로덴드룸 톰소니아이이란다. 자줏빛 꽃이 피는 마편초과식물이다. 여러 꽃 중 압권은 극락조꽃이다. 극락조꽃은 영원불멸, 신비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는데 하늘로 비상하는 한 마리 새처럼 생긴 꽃이다. 망고꽃을 보게 된 것도 행운이었다.


온실 속 식물들은 열매를 맺는다.

작년 수목원을 갔다가 몬스테라꽃을 보았는데 그 꽃 사이에서 열매가 자라고 있었다. 그 열매가 많이 자라서 아래 부분부터 오각형을 만들고 있다. 아직 자라지 않은 키위처럼 생긴 비파나무도 열매를 맺어서 익어간다. 비파나무 열매는 익으면 노란색으로 변한다. 파인애플, 바나나, 파파야도 녹색으로 달린 열매를 키우고 있는 중이다.


초록이 고파서 허기나 채우러 왔는데 포식을 했다. 야외에 파릇파릇 새삭이 돋고 나무에 새순이 돋을 때까지 꾹 참고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맘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 있다면, 나는 왜 이 나이까지 이렇게 물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잠시 초록빛 속에 머물기를 추천한다. 좋은 사람과 함께여도 좋지만 그보다는 온전히 혼자의 시간을 추천한다. 초록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이다. ​


 I


극락조꽃


극락조꽃
야자나무


야자나무
부겐베리아
홍화야래향
몬스테라 열매
몬스테라열매 ㅡ 자라면서 아래부터 오각형무늬가 생긴다
파파야열매
비파나무 열매
바나나 열매
망고나무꽃
클레로덴드룸 톰소니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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