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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걷는 최선화 May 10. 2023

식물에게 침묵을 배워가는 중이다. - 겹매발톱꽃

식물의 재발견 - 식물일기

23. 5. 10. (수) 한낮이 덥다.


식물에게 침묵을 배워가는 중이다.

엄하신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두리반에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 5초 이상 텔레비전에 눈을 주면 "TV 꺼!"라고 하셨다. 3일 단위로 군기를 잡으시는 아버지께 셋째인 나는 아버지 눈치를 살펴 보좌해 드리는 일이 맡겨졌다. 약주해서 누워계시면 양말도 벗겨드리고, 물도 떠다 드리니 많이 예뻐해 주시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자존감 대신 눈치를 키우며 자랐다.


눈치를 본다는 건,

나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맞추면서 살아가는 일이다. 누군가 기분이 나쁘면 내 탓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어색한 분위기를 풀려고 과장된 말과 행동을 보이곤 했다. 그러다 보니 쾌활한 사람이란 평을 듣기도 했지만 조금은 막 대해도 되는 가벼운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다.


나의 과장된 행동에 그러지 말라는 제재를 받았다. 그러고 돌아오는 길에 자존감 없는 스스로를 미워하고, 자존감 뿜뿜인 지인을 부러워했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다. 나는 이제 어딜 가서 분위기가 어색해도 참을 줄 안다. 침묵에도 익숙해지는 중이다. 굳이 내가 나서서 그 분위기를 바꾸려고 애쓰지 않는다. 정말 그럴 에너지가 있을 때 가끔 옛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괜히 했어.라는 생각이 들면 다음에는 하지 않는다.


나는 침묵의 길을 배워가는 중이다. 오래전 내가 낮에 보였던 내 모습이 싫어 무릎에 얼굴을 묻고 '나는 왜 이럴까?'라며 자체 검열을 하며 나를 비하했다면, 지금의 나는 퇴근 후 무릎에 얼굴을 묻고 나의 공간에서 침전한다. 그러면 어딘가에서 고요함이 찾아온다. 그런 혼자만의 시간이 좋다. 그런 시간은 내일의 내가 또 살아가게 해 준다. 나는 자기애를 키우는 중이다.

샤스타데이지 - 23. 5. 10. 아산 지중해마을
겹매발톱 23. 5. 10. (수) 아산 지중해 마을

장미  23. 5. 10. 아산 지중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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