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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릇한 향내 가막살나무 꽃

식물의 재발견

by 읽고걷는 최선화

아침 운동을 나갈 때 마스크를 쓰고 나간다. 일교차가 심한 날 아침 찬 공기가 강사인 내게 극약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눈곱만 떼고 모자로 산발인 머리를 감춘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까닭도 있다. 오랫동안 동네에서 독서샘을 한 후유증이다.


아침 운동을 나가려고 거실로 나왔다. 열어둔 창문으로 습하고 미지근한 공기가 들어온다. 그래서 오랜만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현관문을 나섰더니 후각이 먼저 발동한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도시의 냄새가 코끝으로 스며든다. 습도가 높은 날씨에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냄새,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한 자리에 남은 잔여물들이 풍기는 냄새들이 뒤섞였다. 공원 싱그런 오월의 향기가 필요한 순간이다. 서둘러 공원으로 달렸다.


지금 한창인 찔레꽃 향기와 일주일도 안 돼서 시들고 말았지만 향기가 남아있을 아까시향기를 기대했는 데 오묘한 향이 공원을 감싸고 있다. 이런 냄새를 풍기는 나무를 안다. 밤나무다. 밤꽃의 오묘하고 야릇한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공원을 잠식하고 있는 듯하다. 무슨 냄새인지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찾.았.다.

가막살나무가 하얀 꽃을 피웠다.

오월에 피는 하얀 꽃에 찌릿하고 향기로운 찔레꽃이나 바람을 타고 추억을 나르는 아끼시나무 꽃만 있는 게 아니다. 가막살나무꽃도 있다.

냄새의 원인을 알 수 없는 큰 공원을 피해 야트막한 동산이 있는 작은 공원으로 갔더니 거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가막살나무를 만났다. 향내가 공원을 가득 채운다. 여우를 피하려고 호랑이굴로 들어간 형국이다.


나는 그 오묘하고 아리까리한 그 향내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데 곤충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아침부터 가막살꽃 뷔페가 만석이다. 나는 보고 냄새를 맡고 이쁘다, 향기가 별로다 하고 속으로 품평하면 그만이지만 저네들은 꿀을 얻어가는 대신 수정을 해서 열매를 맺게 해 준다. 그러니 가막살나무나 꽃 입장에선 나보단 곤충들이 훨씬 고마운 존재일 거다.


사는 것도 그렇다. 좋다, 멋지다 하고 좋은 말을 해 주는 사람도 좋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이 더 감사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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