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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Sep 06. 2021

똥물도 부서질 땐 하얗다

순간이 전부일 때가 있다

이나 시냇가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단차가 있는 부근에서 물이 하얗게 부서지며 흐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부서지는 지점의 물살은 하얗고 투명해 보여 깨끗해 보이는 착각을 일으킨다. 하지만 그 지점을 조금만 벗어나면 물은 다시 본래의 모습인 흐릿하고 탁한 모습으금세 본모습을 찾아간다.


대학 시절
술만 마시면 개가 되는 인간의 전형을 마주했다.


평소에는 깍듯이 예의 바른 후배이자 인정 많은 선배의 모습으로, 그에 더해 수줍음 많은 동기의 모습으로 지내다가 술만 들어가면 적당한 선에서 조절하는 법 없이 만취할 상태까지 마시고 난 다음 꼭 사고를 치고서 눈물을 흘리며 반성을 하는 그를 바라보며 처음에는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그 친구의 행동을 교정해줄 수 있다는 헛된 믿음으로 설득을 하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 친구의 주사는 다양하기도 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후배 밤늦게 불러내 설교하기, 설교하다가 의견 대립이 일어나면 폭력을 행사하기, 의견 대립이 없어도 종종 기분에 따라 폭력을 행사하기, 후배들을 불러놓고 술값을 계산하게 하기, 마주 앉은 사람들에게 무조건 원샷을 강요하기, 더 이상 술을  마시겠다고 말하면 토하고 와서 마시 기, 심지어 여자 친구가 술을 못 먹는다고 하자 여자 친구의 입에 술병 밀어 넣기(경악), 다른 사람 의견은 무조건 틀린 것으로 치부하기,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후배들에게 억울하면 대학 빨리 오지 그랬냐며 조롱하기... 이 모든 것을 대학시절 내내 반복하면서 다음날 낮이 되면 기억이 안 난다며 당사자들 찾아다니며 사과하기.


이 무슨 해괴한 일일까.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동시에 사람이라면 실수를 통해 깨닫는 것이 있다.

진정으로 깨달았다면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한두 번이라면 실수라 생각하고 지나칠 수 있을 테지만 무려 4년 동안 같은 실수를 거의 매일 같이 반복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분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 웬만한 계기로는 변화시키기 힘들다는 것, 똥물은 아무리 희석을 해도 똥물이라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술만 안 마시면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이 항상 따라다닌다는 것이었다.


일단 거의 늘 술을 마시고 다니는 사람에게 "술만 안 마시면"이라는 전제가 붙는 것이 이상했고 설령 술을 안 마셨을 때 괜찮다고 한들 술을 마셨을  때 벌어지는 저런 일련의 사건들이 커버가 될 만큼 평상시 훌륭한 인품을 보여주었는지도 의문이었다.


그저 순종적이고 말수가 없이 배시시 웃고 다닌다고 해서 그 사람을 괜찮은 사람이라 평가할 수 있을까. 심지어 술이 들어가면  이 모든 것과 반대되는 태로 행동 양식이 변화되는 사람을 두고 무엇이 그의 본성이고 본질이며 진짜 그의 모습이라 판단할 수 있을까.


유일한 정답은 그가 평생 술을 끊는 것일 테다. 평생을 두고 매일 같이 옆에서 그를 지켜볼 인내심을 가질 사람은 배우자와 자식 말고는 없을 테다.


순간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반복되는 순간들은 가끔 명확한 판단의 근거가 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 게다가 그 실수가 귀엽고 봐줄 만한 실수가 아니라 그를 멀리해야 할 것 같은 시그널을 주는 실수라면 우리는 서둘러 그 사람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그것만 빼면 괜찮은 사람은 없다. 그것이 그 사람의 본질일 때가 많다. 결정적인 순간 그 사람의 "그것"은 언제고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걸레는 아무리 빨아봐야 결국 걸레일 수밖에 없고 똥물도 부서질 땐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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