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과 고통 중 무엇을 먼저 느끼는가

삶의 중심이 나인가 타인인가

by 정 호

자전거를 빠르게 타다가 넘어지게 되면 손바닥과 무릎이 까져 피가 흐르기도 하고 돌멩이에 찍혀 엉덩이나 허벅지의 뼈가 부러진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이런 커다란 고통이 밀려옴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에는 고통보다 부끄러움이 먼저, 그리고 크게 내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아픔보다 부끄러움을 먼저 느낀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아마 나에게 집중하기보다는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먼저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리라.


어린 시절엔 내가 나를 바라보기보다 타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때가 더 많다. 그것을 이제 와서 알게 되었다고 한들 이미 벌어진 일을 바꿀 수도, 그렇다고 나의 자녀들에게 알려준다고 하여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처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것은 계절이 바뀌듯이 그저 그런 식으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일들 가운데 한 종류일 뿐일 테다. 그저 일어나는 일을 가지고 맞았는지 틀렸는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아마도 무의미한 일이리라. 하지만 고통스러운 순간조차 나의 고통을 살피고 괴로워하기보다 누가 알아챈 사람은 없는지, 내 모양새가 남들 눈에는 어떻게 비치는지를 생각하기 바빠하는 모습은 분명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어렸던 시절을 한 번 떠올려보자. 기억이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어린 시절, 그러니까 유치원에도 들어가기 이전의 아주 어린 나이의 아이들은 고통이 발생했을 때 오롯이 본인에게 집중한다. 삶의 기준이 타인이 아니라 완벽히 나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아파도 자신의 아픔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자신의 고통에 공감해주길 바라며 부모를 바라본다. 그들의 눈에서는 자신의 고통 이외의 그 어떤 것도 발견해 낼 수 없다. 이 시절의 어린아이들은 타인의 관점이나 타인의 생각 같은 것은 일체의 간섭을 할 수 없는 완벽한 자신의 영역 안에서 삶을 꾸려가고 있는 까닭이다.

얼마간 나이를 먹은 우리는 어떤가. 여전히 나라는 존재를 나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타인의 눈으로만 바라보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이는 단순히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한다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그치고 지나가기에는 무언가 아쉽고 부족한 감이 있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어쩌면 아직 어린아이에서 진짜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나이를 먹을수록 아이가 된다는 말은 어쩌면 단순히 철이 없어진다거나 자기밖에 모르게 바뀌어 간다는 의미로 쉽게 해석해버려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 아이야말로 진짜 어른이 갖춰야 할 덕목을 갖추고 있는 존재라는 의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울 때 부끄러움보다 고통을 먼저 느낄 수 있고, 행복할 때 겸손함을 표현하기보다 기쁨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아이 같은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 조금씩 나를 타인의 눈이 아닌 나의 눈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