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배우느냐보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느냐

이과는 이해 못 할지도 모를 문과 갬성

by 정 호
인간관계? 사람? 다 필요 없어
결국 남는 건 내 기술이고 내 실력이야.
실력만 있으면 사람은 따라오게 되어 있어.


"적시적지"라는 말처럼 세상 모든 언어는 적당한 때와 적당한 장소에 쓰이면 맞는 말이 되지만 적당하지 못한 때와 적당하지 못한 장소에 쓰이면 틀린 말이 된다. 즉 같은 말이어도 사용자, 사용처, 사용 시기에 따라 정답이 되기도 오답이 되기도 한다. 고로 앞서 말한, 사람보다 실력이 우선이라는 말은 기술계열이나 직업적인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맞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나 인문학적 소양을 습득하는 과정, 자아성찰적 측면에서 생각해 봤을 때 이는 틀린 말처럼 들린다.


결혼한 지 5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해당 기간 동안 가정과 직장 이외의 공간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적었다. 아니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기존에 맺어둔 관계들을 제외하고 새로운 관계 맺음을 시도하지 않았다. 아이를 돌보느라 피곤하다. 대학원 때문에 짬이 안 난다. 주말에 가족 행사가 있다. 누가 들어도 딴지를 걸기 어려워 보이는 그럴싸한 이유들로 타인을 넘어 자신마저 제법 그럴듯하게 속여가며 새로운 만남과 새로운 배움으로부터 눈을 거둔 채 지내왔다.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인생이라던가. 정을 취하면 동이 그리워지고 동을 취하면 정을 바라보게 되는 것처럼 정과 동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결혼 전 20대 시절의 삶이 동적인 삶이었다면 결혼 후 약 5년의 시간은 정적인 삶이었다고 나름의 정의를 내려본다. 물론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 또한 어떤 측면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일 테다. 예를 들어 사고의 변화 폭이라던지 삶의 양식의 변화 같은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20대 시절이 오히려 정적이고 결혼 이후의 삶이 동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테지만 여기서는 인간관계의 변주의 폭으로 제한하여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20대 시절에는 사람이 좋아 무턱대고 사람을 만나기 위해 종목(?)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녔다. 배구, 탁구, 수영, 복싱, pt 등 운동과 관련된 모임에 잠깐씩 얼굴을 들이밀기도 해 보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배짱이 있었는지 독서 토론, 영화 토론, 영어 회화처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는 모임들에 발을 들이기도 했다.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며 게스트하우스에서 낯선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아했고 찾아다닐 수 있는 온갖 술자리란 술자리는 다 찾아다니며 얼굴과 이름 전화번호를 아는 것이 마치 그 사람을 한 명 알게 된 것으로 착각하며 지냈던 멍청하도록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결혼 후 새로운 인간관계라는 것이 거의 단절되다시피 5년을 지내다가 최근 1년 사이 새로운 모임에 여기저기 발을 담가보고 있다. 20대 시절에는 찬물인지 뜨거운 물인지 온도도 보지 않고 마냥 물이 좋아 첨벙대는 어린아이처럼 무턱대고 발을 담갔다가 "앗 차가워", "앗 뜨거워"를 반복하는 모양새였다면 요 근래에는 발을 담그는 것이 꽤나 조심스러워진 모양새다. 그것은 아마 스스로에 대해 조금은 더 자세히 알게 된 탓일 수도 있고 삶에 대한 자세가 조금은 더 진중해진 탓일 수도 있겠다. 사람이야 늘 스쳐 지나가는 것이라지만 스쳐 지나는 사람들 중에서도 나에게 크고 작은 형태로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쉽사리 내 삶 안으로 낯선 타인을 들여놓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20대 때 앞뒤 안 가리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던 것과 달리 지금은 조심스레 글쓰기, 책 쓰기, 인문학, 철학과 같이 나의 마음이 동하는 모임들에 한해서 조금씩 발을 담가보고 있다. 그런데 그런 류의 모임들에 들어가 배우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는 과정을 조금씩 거치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이든 철학이든 글쓰기든 무엇을 배우더라도 결국 시작과 끝에 가서 하게 되는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음악, 미술, 철학, 과학, 역사를 거울 삼아 나를 들여다보고 내 삶을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대부분의 인문학 공동체들의 작동 방식이다. 그 안에서 무엇을 배우느냐도 물론 중요하다. 배움을 통해 인식을 확장시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을 새로이 보게 되고,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비로소 느끼게 되니까. 그것은 삶을 풍요롭고 다채롭게 만들어주고 무언가를 베풀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뀔 가능성을 열어주니까.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느냐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과 싱크가 맞아떨어져 조화롭게 그 속으로 녹아들어 가느냐에 따라 아무리 좋아 보이는 모임도 곁다리 신세를 전전하다가 튕겨 나올 수도 있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 틈에 뼈를 묻을 수도 있는 일이니 말이다.


인사가 만사다. 남는 건 사람이다. 사람이 먼저다와 같은 캐치 프라이즈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 있었던 모양이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한 세상을 마주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그 말처럼 사람은 사람에게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시작은 "무엇"때문이었겠지만 끝은 "누구"때문일 때가 많다. 결국 우리는 사람 사이에서 살다 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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